며칠 전, 볼 일도 있고 해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오전 중이면 처리 가능한 일이라, 반나절은 충분히 남겠구나 싶어 무얼 할까 고민하다

평소 SNS 를 통해 알게 된 지인분을 뵐 요량으로 출발하기 전에 기별을 넣었더니,

흔쾌히 수락을 하시어 지인분의 사무실이 있는 연희동에서 약속을 잡게 되었습니다.

 

사실 SNS 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관계를 맺은 분을 만난다는 것이

제겐 다소 생소한 경험인지라, 약간은 멋쩍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만,

수년 간, 서로의 생각이나 지향하는 바를 공유하며 얘기해 온 시간이 있으니

잘 통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역시.

 

실제로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눴지만, 그 자리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한 비즈니스'에 관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자는 의기투합까지 이끌어 내었으니, 이쯤되면 연희동 결의쯤으로 

해석해도 무방할테지요. 특히 서로가 진행하는 업무 자체가 다른 업태라서 서로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까지 갖추게 된 셈이니, 이거 저로서는

크나큰 영광을 누리는 것은 물론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게 되었으니 기쁘기 그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지속가능성을 위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선 어찌해야할까요.

 

 

그 대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지인분을 만나 알게되고, 그와 함께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해나가며 관계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면, 바로 그러한 관계를  비즈니스에 결합시킬 수만 있다면

가능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온라인을 통해 친구를 맺는 것은 약간의 수고를

드는 일일 수 있습니다.생각보다 가령, 친구를 맺고 싶어 팔로우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지만

상대방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관계'를 맺었다고 단정짓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렇게 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관계'를 끊고 싶다면 언제든 팔로우 취소나 친구 끊기를

통해 한 번에 흔적을 지울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친구를 맺기 위해선 두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친구를 끊기 위해선 한 사람의 클릭 한 번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치 신성불가침의 조약과

같은 친구를 그리 쉽게 끊을 수 있도록 만든 오늘날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든 약간의 노력으로 새로운

친구를 양산해낼 수 있는 대체 가능함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대체 가능함에 반하는

무언가를 관계의 롱런과 결부시킬 수 있다면 지속가능성을 위한 작은 행동을 만들 수 있지 않을련지요.

그리고 그 행동이 대체 가능함의 인스턴트화를 막아줄 효모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며칠 전, 대구 시내를 지나다 어느 한 가게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폴리 전통 방식의 화덕피자를 판매했는 그 가게는 예전에 지역 기반의 소셜 마케팅 회사에서

자신들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대구에서도 만날 수 있는 나폴리 피자'와 같은 제목으로 여러 미사여구를

곁들인 광고를 본 바로 그 곳이었습니만 불과 몇 달만에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순간만 기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선 사업이 확장되어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하였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또 씁쓸해질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대체 가능해지는 인스턴트 시대에서 어찌보면 우리가 맞이해야 할 당연한 현실이겠지만,

어느 누구도 뭐라할 수 없는 사회의 일반적 현상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누군간 이에 반해 만들고, 공유하며 성장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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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몇 달 전부터 아는 동생 녀석 하나가 '쿄토에 가고 싶다'며 이것저것 물어보더군요.

무엇이 그리 보고 싶냐 반문하니, 이 녀석 하는 말이 가관.

 

"형님께서 늘 쿄토에 대해 말씀하시고, 글 쓰시는 것을 보니 가보고 싶어서요."

 

사실 쿄토는 처음 가보는 이에겐 가모가와(江)의 유유자적함이라든지, 본토초의 술내음과 같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보다는

금각사의 화려함이나 아라시야마의 수려함과 같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물리적 형태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만,

제가 하는 말 한마디, 글 한 자 귀담아듣는 이가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어떤 걸 얘기해줘야 할 지 난감해져버렸습니다.

게다가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비밀 정도는 하나 가지고 싶은 욕심에 반하여 쿄토에 대해 알려줘버렸다간

마치 침대 밑에 숨겨둔 플레이보이 잡지를 부모님께 들키는 위태로운 사건에 휘말리는 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본래 내 것이 없는 게 이 세상 이치이기도 하고 저 마다의 속사정이란 것이 있으니

하물며 녀석이 저의 이야기를 들어 호기심의 발로로 쿄토를 가야겠다 마음 먹었어도 분명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어 가지 않을까

생각하곤 필요한 정보와 함께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 내외분께도 전화로 기별을 넣어 잠을 청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녀석이 어제 돌아왔습니다.

짧은 일정이라 발에 불이 나듯 돌아다녔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물론 쿄토의 살인적인 더위도 한 몫했겠지만 말이죠.

녀석은 대뜸 '이노다 커피'의 '아라비안의 펄'을 원두 한 통을 꺼내들더니, 선물이라며 제게 내밀었습니다.

 

"형님께서 과연 좋아할만 한 곳이더군요. 카페에 음악이 없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좋은 것은 많이 보고 왔냐 물으니, '청수사와 철학의 길에만 다녀왔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다녔다', '추천해 준 숙소에서

쿄토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특히 숙소에서의 위안 얘기가 나왔을 땐, 한 번에 그 즐거움을

알아차렸다고 생각하니 제가 해준 말들이 녀석에게 잘 와닿은 것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것 참, <쿄토 여행 단기 속성반 과정>을 하나 개설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과정 등록비는 추후 이노다 커피 아라비안의 펄 원두 한 통씩이면 족하지 않을까요.

 

마침, 커피를 마시기 위해 올려놓은 전기포트도 부글부글하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툭 하고 꺼집니다.

가모가와에서의 저 먹구름은 필시 타임머신을 타고 지난 5월로 돌아간 제 마음이 쿄토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발로로

표현한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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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디저트 카페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듯 합니다.

길을 걷다가도, 차를 타고 낯선 곳을 지나가다가도 '어!'하고 바라보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이 바로 디저트 카페.

얼마전까진 분명 비어 있는 점포였는데 어느새 오픈을 알리는 현수막이 다소곳이 붙어있고, 희황찬란한

불빛을 뿜어내는 네온사인 아래,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의 행렬을 바라보면 '과연 디저트 카페가 대세긴 대세구나'

생각합니다만 디저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저의 기호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유행이 가보고 싶은 마음을 만들기엔 글쎄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각 종 뉴스에서도 연일 디저트 카페의 광폭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걸 보면

'아! 이거 나만 유행에 뒤쳐지는 사람이 아닌가'싶어 멋쩍은 표정도 가끔 자아내곤 합니다.

 


 

 

● 빙수 전문점, 오픈 1여년 만에 가맹점 300개, 창업대기자 150명 확보!

 

● 식품관 디저트 카페 매출이 백화점 의류 브랜드관을 제쳤다!

 

● 오사카 명물 롤케이크 매일 준비물량 품절 현상!

 


 

 

 

이런 기사 뿐만 아니라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최근 가장 잘 나간다는 한국형  디저트 카페를 100억원에 인수한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하니,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 뿐만 아니라, 기존 커피 전문점에서도 앞다퉈 빙수와 같은 디저트 메뉴들을 출시하는 것을 보니 업계에서도

디저트 카페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없는듯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디저트 카페의 유행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일각에서는 과거 1층만을 고집하던 카페 입점 형태에서 벗어나 2~3층으로 올라가 월세부담을 줄이고, 단품의 가격이 여타 음료보다

단가가 높아 마진이 올라가니 덩달아 관심도가 올라갔다는 판매자의 관점에서부터, 그 동안 커피등의 음료에만 국한되어 즐기던 식음료

문화가 다양성을 띄게 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소비자의 관점까지 다양한 분석들을 내세우며 요인을 찾습니다만, 제가 생각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기술의 발전을 통해 변해가는 소비자의 구매의식 전환>> 이 아닐까요.

 

기술의 발전은 분명 소비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해주는 인터넷의 확산은 직접적인

경험을 간접적인 정보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가령, 오늘 밤 노르웨이식 가정식 백반을 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터넷을 통해 레시피를 간단히 찾아내고, 운이 좋다면 고든 램지가 만든 요리의 동영상으로 요리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찾은 레시피와 본인의 요리는 정보로 가공되어 다시 인터넷을 통해 재공유가 되어 그 정보를 원하는 다른 소비자에게로

전해질 것입니다. 이때, 그들은 직접 가지 않고도 노르웨이식 요리를 체험할 수 있게 된 셈이니, 반드시 직접 가서 맛볼 수 있었던

과거에 비해 구매의식이 전환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디저트 카페, 아니 디저트 문화도 그러한 경험들이 창출한 유형의 산물

이 아닐까요. 직접 가야만 맛볼 수 있었던 전 세계 각국의 유명 디저트도 클릭 한 번으로 찾아내고 맛볼 수 있는 세상에서 소비자의

구매의식 전환과 그 움직임은 예전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하게 소비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이러한 유행의 움직임은 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높은 곳에 있을수록 길게 떨어진다'는 메탈리카의 노래 가사처럼 유행이 종말을 고하는 시점에선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디저트 카페의

매장들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많습니다. 훨씬 빠르고 정교한 패턴을 선보이는 소비자들의 변덕이 심해질 경우,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찼던 매장의 간판은 불빛을 잃을 것이고, 그 곳엔 또다른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탈바꿈하겠지요. 디저트가 수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아직 먹어보지 못한 디저트가 수천 가지가 된다고 해도 소비자들의 구매의식은 늘 다른 방향으로 전환될 것

입니다. 지금은 비록 달콤한 풍미를 남겨 우리들의 식후에 남은 뒷맛을 없애는 효과를 주더라도  테이블을 치운다는 프랑스語인 'Desservir(데세르베르)'에서 유래된 자신들의 어원에서 나아가 우리들의 머리속에서 치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유행의 이면에 숨어 있는 무명씨의 누군가가 그 디저트를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제가 살고 있는 골목에서 만난 디저트 카페에서조차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만든 것을 먹는다는 것은 되려 그 달콤함을 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골목에서 만나는 가게에서만큼은 주인이 누군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슨 연유로 음식을 만들게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가격이 비싸고, 맛은 없더라도 분명 통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가게가 내 가게가 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유행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위의 유행 속에서도, 기술의 발전 아래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밑천을 통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 스스로가 정보 그 자체가 되어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는 것.

 

골목에서 만나는 가게들은 꼭 그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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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두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결심이 한 가지 있습니다.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기획'을 하는 일.

그리고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근원적인 물음의 해답은 시나브로 확보하고 있는 중입니다.

 

헌데 기획이란 일이 지식서비스, 즉 실체가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보니 수익성에 대한

반문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매출에 대한 볼륨을 신경쓰는 것은 아니나, 운영이 지속적으로 될 수 있는

자금은 가급적 유입이 되어야 하므로 무형을 유형의 존재로 바꿔 어필할 수 있느냐도 근원적인 물음을 찾는 것과  

함께 찾아야 할 난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금사정만 확보된다면 기획과 실행을 동시에 하여 제품판매까지도

이어갈 수 있겠지만, 그것이 '욕심'에 근거하고 있다면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것도 저의 일인지라,

기실 딜레마에서 허우적 거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일종의 난센스랄까요.

 

그래서 제가 애초에 구상했던 것이 바로 '종족찾기'와 '종족의 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닌 무형의

가치와 저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지니고 있는 유형의 산물을 결합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의 개체,  

종족(Tribe)을 탄생시킬 수 있다면, 상호작용을 통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으니 최소한 이러한 난제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뭐 아직까지는 제가 지닌 가치와 생각을 많은 이들에게 공유하진 못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한 분씩, 한 분씩 동참할 수 있는 계기는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할 몫은 그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가치를  제안하고, 스스로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자생력을 길러주는 것,

사회의 시스템에 자신을 넣는 것이 아닌, 스스로 시스템화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가령 자신만의 룰(Rule)에 의해 식당을

운영하면서 주변에 피해가 되는 손님들은 과감하게 받지 않으며 끊임없이 제품개발에 힘써 찾아오는 이들에게 하나라도

보다 맛난 음식을 제공하는 일.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기대감보단 살고 있는 동네, 운영하고 있는 골목길이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야 말로 제가 앞으로 꾸준하게 전개해야 하는 일이야 말로 제가 구상하는 '기획'의 근원이 아닐까 합니다.

 

 

 

'등대처럼 한결같이 어두운 곳을 밝히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오늘날 제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추신) 작년 대명동에 첫 사무실을 열고 난 뒤,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대구 경상감영공원 인근

근대 역사관 바로 옆에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낌없는 조언과 성원을

해주신 유레카 형님께 다시한 번 감사의 말씀을 띄웁니다. 형님! 도배랑 바닥이랑 완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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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는 개발되고 있습니다.

낡은 건물들은 허물어져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새로운 건물에는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게 됩니다. 이러한 상점들 가운데는 몇 년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가게는 그대로인데 주인만 바뀌는 경우도 있겠지요.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 이러한 '개발과 변화' 는 사실 익숙한 광경이 되다보니, 사라지는 상점들이 늘어난다 하여도 크게 동요되지 아니할 뿐더러, 비슷한 상점들이 이내 들어서 이를 대신할 것이니 개의치 않는 마음만 줄곧 늘어나는 듯 합니다. 이쯤되면 '개발과 변화'라는 키워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미명아래 수긍할 수 있는 타협점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질은 커녕 삶을 누리는 여유조차 빼앗아버리고 마는 무형의 유산으로 치부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샌가 우리는 '대체 가능함'에 익숙해진 사회에 살고 있고, 이는 당장의 '불편함'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령, 불편함을 느끼고 '개발과 변화'를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자고 반문을 하여도 '대체 가능함'이라는 도마뱀뇌가 금방 작동하기 때문에 '반문'이 '성찰'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조차 쉽게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추론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타격이 없다면, 타인의 삶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요소도 한 몫 하는 것이 틀림 없을테구요. 공분을 살 수 있는 일에만 쉽사리 반응하지,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선 큰 관심을 두지 않으니 말입니다. 조금 생뚱맞은 비유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없지만 기분이 상당히 상할 수 있는 모습인 반면 우리 동네에 큰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나의 조망권과 기타 여러가지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아무런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것과도 같은 이치 아닐까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발과 변화'라는 단순한 개인의 부(副) 축적으로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시야를 만들게 됩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도 말씀하실 수 있지만, 경제논리등을 다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개발과 변화가 분명히 부를 가져다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틀림 없으니 말입니다. 가령,

낡은 건물의 주인은 비록 은행에 융자를 받는다 할 지라도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으로 이를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지어 임대 수익에 나서게 되고, 새로운 상점을 열려고 하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곳, 나은 환경에서 사업을 하여 한 푼이라도 많은 수익을 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 것이죠. 개발과 변화 아래에서 부의 축적을 위해 '본디 지니고 있어야 할 의지와 의무는 내팽겨쳐진 채' 스스로 '대체 가능함'이 되어가고 '불편함'을 가져다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현실을 과연 어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요.

 

 

요즘 사업 진행을 위해 많은 곳을 직접 발품 팔아 다녀보기도 하고, 컴퓨터로 들어가고자 하는 곳의 정보도 많이 찾아보고 있습니다만, 역시 '개발과 변화' 속에서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기란 제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자금의 한계에 따른 선택의 폭이 좁아들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여기다싶으면 돈을 빌려서라도 들어가고 싶은 곳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골목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면 온통 술집으로 가득차 있고, 많게는 수십 배 오른 집세하며, 오로지 서로의 부(副)를 위해 네온사인을 비추고 있는 거리까지 단 하나라도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빛내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듯 합니다.

 

 

시림들을 모으고, 모인 사람들이 무언가를 공유하며, 공유된 것들을 키울 수 있는 공간.

 

 

 

스스로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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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2014.06.09 12:31 from ON THE PLANET/JAPAN

 

 

 

 

 

한 곳으로 여러 번 여행을 떠나다 보면 예상치 않았던 혜택들을 얻곤 합니다.

우선은 지도나 안내책자 없이도 큰 불편함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경험에 의한 학습능력'이 갖춰집니다. 이러한 능력은 불편함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이동 경로등의 복잡한 생각등을 비워냄으로써 온전히 자신의 의지에 따른 '시간 소모'를 가능케하지요. 둘째로는 그 '시간 소모'가 가져다주는 '여유'일 것입니다. 어디 마음에 드는 cafe 가 있다면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는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졸음이 오면 눈을 붙이면서 마치 살고 있는 동네에서처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래도 가장 큰 혜택이라는 놈은  역시 '사람과의 관계'인데요, 특히 여행지에서 머무르는 숙소의 호스트와는 '단골손님' 이미지가 자리잡는 터라 관계맺기의 기반을 닦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융숭한 대접까지 받게 된다면 '단골손님'에서 '오랜만에 찾는 지인'으로 이미지가 격상되어 '어디 맛난 곳을 함께 가서 식사를 먹는다거나', '숙소에서 호스트 가족분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거나','호스트가 직접 차를 몰아 구석구석을 함께 돌아다녀주는' 호사(Luxury)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꼭 어느 시인이 얘기한대로 '여행에서 돌아올 때 가방이 더욱 무거운 연유는 필시 여행지에서 맺은 사람과의 인연 때문'이라고 한 말이 적용되어 실제로 귀국길 가방이 훨씬 더 무게가 나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번 쿄토 여행은 제 여행 경험 中, 가장 호사스러웠던 여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해공항에서 예기치 않게 늘 쿄토에서 머무르는 숙소의 사장님을 만났고, 함께 비행기에 올랐으며 오사카에서 버스로 또한 이동을 하였으며 쿄토역에서 번거로움 없이 사모님께서 마중을 나오신 덕택에 편안하게 숙소까지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며 기타야마에 있는 유명한 일본 라멘집으로 저를 데려 가시더니 교자에 볶음밥에 라멘까지 사주시고, 숙소로 돌아와 숙박요금을 계산할려니 지금 여러가지 사정상 숙박을 받을 수 없는데 매번 들러주는 고마움에 요금 또한 제 값에 받을 수 없다며 한사코 손사레를 치며 원래 금액의 반만 받으실려는 것도, 따님의 선물을 사왓다는 말에 반가워하며 일찍 들어오면 저녁을 함께 먹자는 말씀까지 이 모든 것이 제게 있어선 가장 호사스러운 여행이자, 경험이 아니었나 싶어 돌아온 지금에도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가장 즐거웠던 경험은 숙소의 게스트들에게 제가 직접 아침을 마련해주는 일이었는데요, 당시 일요일에 호스트 따님께서 피아노 콩쿨에 참여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그리로 가야해서 호스트께서 제게 어렵사리 잠시만 봐줄 수 있냐고 여쭤보시길래 당연히 봐주겠다고 해서 조식을 준비한 일이었습니다.

뭐 조식이래봤자 토스트에 양배추 샐러드, 삶은 계란이라 손이 많이 가지 않는데다가 미리  계란도 삶아놓으신 덕분에 시간 맞춰 내려 오시는 손님들께 무사히 조식을 제공하고 부족한 커피를 내리는 걸로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조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는데요, 여행을 다니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단순한 토스트 종류가 전부입니다. 허나, 그 간단한 음식에도 손님을 위한 마음을 담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할 수 있는데요, 즉 고객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닌 응대하는 마음가짐을 먹는다고 가정했을 때, 양배추도 곱게 갈아 흐르는 물에 한 번 더 씻게 되고 토스트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지 체크도 하며, 접시는 다시 한 번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다음에 음식을 정성스렙게 담아냄으로써 제 마음가짐도 정갈하게 곱씹어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준비한 음식이 입에 맞는지, 오늘은 어디로 가실건지 여쭤보며 커피를 한 잔 더 권하면서 여행 채비를 갖춘 손님들께 인사도 드리고 여행에 관련된 팁도 드리고 나니, '아! 기분 좋다'는 느낌도 절로 들었습니다. 이렇게 고객을 워하는 가치는 판촉이나 이벤트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같은 시각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나니 제가 구상하고 있던 비즈니스도 조금은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관계를 통한 호사스러움'은 여유와 함께 성찰의 시간까지 가져다주니 분명 크나큰 혜택이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같은 곳을 매번 고집스럽게 반복하게 되는 이유도 명확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것이 제가 가진 여행의 기술을 보다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 기술이 점차 늘어나다보면 분명 어느 곳에서든지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기술도 한층 더 강화될 것 같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쿄토의 하루가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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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IT계 출판사 오라일리 미디어의 팀 오라일리 CEO 가 회사의 브레인스토밍 중에 처음 사용했 WEB2.0 은  '특정기술이나 서비스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웹이라는 인터넷환경의 큰 변화자체를 가리킴과 동시에 그 새로운 경향을 내포하고 있는 뜻' 으로 어떤 기술의 변화가 아닌 환경, 즉 WEB 이라는 인터넷 환경의 총체적인 변화와 트렌드가 기존 1세대에서부터 진화한 것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0년전으로 돌아가 WEB2.0이 도래할 수 있엇던 계기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구조적 변화와 사용자의 증가로 대변되는 양적 증가, 즉 보급의 용이성이 인터넷의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접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인터넷 이용 가격마저 저렴해지면서 사람들의 참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참여에 의한 데이터량이 늘어나고 사용하는 가격이 거의 0에 가까워짐으로써 사용자의 수가 증가하게 되고 블로그등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와 생각들이 전방위적으로 공유되면서 WEB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것이 WEB 2.0의 도래를 이끈 혁신이라고 하겠지요.

 

 

그리고 그 중심에서 WEB 2.0 의 첨병역할을 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온 이들은 바로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igence)'으로 불리어지던 이들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블로그스피어를 통해, 오늘날에 와서는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실시간(Real-Time)으로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점차적으로 '신뢰와 이데올로기'등을 기반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집단지성이 존재하는 인터넷은 인구포화와 같은 일이 야기되지 않을 뿐더러, 그들이 공유하는 정보는 롱테일 법칙처럼 마를 날이 없습니다. 위키피디아와 같은 모델은 집단지성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사레중 하나이고, 이를 보더라도 집단지성은 커뮤니케이션의 표본이자 WEB환경을 살찌우는 거름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집단지성의 움직임에 다음 진화, 즉 WEB 3.0 을 만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 다음 진화를 생각하기 이전에 반드시 '현실 속에서의 자아'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성찰해야 될 필요성이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를 계기로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어제 대구의 한 골목을 지나가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푯말 아래 있는 쓰레기'를 보았습니다. 차가 지나가는 도로이긴 합니다만, 인근에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근대 골목등이 있는지라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앗 쓰레기를 버리면 안되죠'라는 문구와 함께 푯말이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채 쓰레기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 있었습니다. 버려진 쓰레기는 옆구리 터진 김밥마냥 흥건하게 젖은 채 속을 보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엔 이번 지방선거 때문인지 후보자를 위한 선거 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도로를 빠져나가는 사람들과 차량을 대상으로 연신 90도로 허리를 숙이기도 하며 목청껏 큰 소리로 후보자의 이름을 부르짖는 이들을 모습이 쓰레기와 오버랩되면서 더욱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삶의 터전이 부정되는 우리들의 가상 현실에서 한 발을 빼내 우리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쓰레기가 버려진 그 곳은 대구시와 중구청이 관광의 별로 선정되었다며 소셜과 웹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곳이었고 우린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나 다름없는 쓰레기가 양심과 함께 버려져 있는 황무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WEB 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삶의 터전을 포장해버리고, 이를 부정하고 가상현실을 인정하는 '착각의 시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집단지성이 난무하는 가상 현실의 무차별 정보 공격에 '사고의 선택'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이 만든  삶의 터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까지 이른다면, 과연 우리의 진짜 삶은 무엇으로 구분될 수 있을까요?

 

 

WEB2.0은 사람들의 손에 도구를 건네주는 것이다. 함께 일하고 공유하며 협동할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성선설이라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을 연결시키는 것도 분명 선(善)이다. 이를 통해 세계는 틀림없이 바뀔 것이라고 본다. WEB2.0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저는 이베이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아르가 말한 WEB2.0 에 대해서 다시금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善을 통해 연결되고 이를 통해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믿음을 만들 수 있는 것이야말로 본디 우리가 생각하던 WEB 2.0 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의 터전을 오해없이 건강하게 바꿔줄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가상세계에서 우리를 구해낼 구원자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웹 환경의 진화가 거듭날수록 결국 우리들 스스로의 변화도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결국은 저의 잘못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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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쿄토에서 일의 본질을 생각하다


 

 

 

 

 

 

 

사진을 찍다보면 담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비단 풍경을 담아내기 보단 바람에 흩날리는 가지라던지, 지저귀는 새소리나 혹은 캔디드 기법으로 찰영할 때 화면에 잡히는 사람들의 마음같이 무형의 것을 바라는 제 욕심에 카메라를 그냥 들고 있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 또한 '마음을 비워야 렌즈에 채울 수 있는 것'임을 잘 알기에 요즘엔 아무생각 없이 셔터만 찰칵찰칵.

 

 

물론, 쿄토 같이 담아낼 수 있는 피사체가 많은 곳에선 더더욱 말이죠.

 

 

 

 

오랫동안 일본의 수도로서 역사를 간직해오고 있는 쿄토는 매년 국내외에서 천 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적인 관광지입니다만, 사실 쿄토는 2차 세계 대전이 종전으로 치닫을 때쯤에 일본의 위세를 한 번에 꺾어버리기 위한 연합국의<원폭 투하 지역>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폭의 1차 피해지역인 히로시마의 경우에는 대규모 군수공장 및 항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도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지역이었기에 연합국의 입장에서는 핵폭탄의 위력이 어느정도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 구릉지대가 많아 원폭의 피해가 배로 증가할 수 있기도 했지요. 쿄토 또한 군수공장을 제외하고는 히로시마와 거의  동일한 이유로 선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인의 정신적 수도이자, 1천년 동안 한 나라의 수도였다는 역사적 사실이겠지만요. 허나, 그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이던 헨리 스팀슨의 요청등에 따른 우여곡절을 거치고 나서야  <원폭 투하 지역> 리스트에서 삭제가 됨으로써 천수를 누린 그들의 문화를 고스란히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나가사키시(市)의 경우에는 고쿠라의 대체 지역으로 선정되는 아이러니함에 의해 원폭의 피해지역이 되어버렸지요. 어찌되었건, 원폭지역에서 '삭제'된 것은 결국 전 세계적인 입장에선 '축복'이자 '행운'이 아니었나 합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원폭이 투하되지 않았기에 쿄토는 매년 전 세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고, 여전히 일본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런것일까요? 쿄토사람들은 일본 내에서도 유난히 자부심이 높은 것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지역색이 아주 강하게 자리잡은 곳이기도 합니다. '3대가 살지 않았다면  쿄토 출신이라 부르지 못할만큼' 쿄토에 대한 애착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자국 내에선 쿄토 출신들은 어딜 가더라도 일단 먹고 들어간다는 속설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일부를 쿄토에서 경력을 쌓아 다른 도시로 옮겨가는 사람들까지도 있다고 하지요. 어디 그 뿐인가요? 아직도 쿄토 출신들 중엔 '도쿄로의 수도 이동은 단지 임시로 옮긴 것 뿐이며, 그 결과 천황의 즉위식같은국가적 행사도 여전히 쿄토에서 거행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쿄토사람들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쿄토의 역사를 상기시키다 보니 엉뚱한 생각까지 해봤는데요, '쿄토에 유난히도 세계적인 대기업의 본사가 자리잡고 있는 것'도 그들의 애착심과 결부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닌텐도라든지, 경영의 신(神)이라고 불리워지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쿄세라, 몇년 전 한국에서도 책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일본전산, 재일교포 회장이 운영하는 친절택시의 대명사 MK택시등도 쿄토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무라텍, 엠롬, 속옷회사인 와코루도 역시 쿄토에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에 지난 198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많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을 하던 와중에 무너지지 않고 그 세를 오히려 확장시킨 기업들 중에 쿄토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이 많았고 이러한 그들의 노력과 전략등이 몇 해전, 쿄토식 경영이란 책으로도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의 행보가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도 '쿄토라는 도시' 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면서 가모가와를 거닐다가 산조 도오리로 들어가는 와중에 안도 타다오의 초기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 TIME'S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약 30년 가까이 된 건물이라고 하기엔 건물의 외관이 여전히 세련되고 담백한 맛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여기 앞에 서서 담배를 하나 물었습니다.

 

쿄토가 가지고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심히 생각하다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것은 쿄토라는 도시는 현재가 과거를 새로 단장하여 꾸미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곳이 아닌, 과거가 현재를 빚어내 그 빛을 잃지 않도록 자연스런 상태로 유지시켜주는 곳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스타일이 좋으냐, 나쁘냐가 아닌 스타일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기에 변함없이 자신의 모습을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까지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마침내 질문에 대한 답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그 대답이 행여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정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고심해보았습니다.

그저 커리어를 늘리기 위한 일이 아닌, 자신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와 그대, 즉 과거와 현재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들이 스타일을 잃지 말고 함께 나아가 내일의 빛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제가 추구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때마침 담배의 재는 모두 재떨이에 비웠고, 저는 다시 제 갈 길로 접어들면서 힘차게 자전거의 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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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노다 커피에서 Cafe 를 생각하다.


 

 

 

"나의 베이스캠프, 브룩스 산맥에서 북극권의 광대한 툰드라 지대로 퍼져나가는 이름 없는 계곡에 있었다. 여기에 제일 가까운 내륙 에스키모 마을까지는 브룩스 산맥 너머로 200킬로미터나 된다. 7년 전 이 계곡에서 처음 카리부 떼의 계절이동과 조우한 이래 나는 매년 이 자리로 돌아온다. 어떤 장면은 이렇게 한 인간을 두고두고 끌어당기기도 한다."  -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는 아마 제게 있어선 쿄토쯤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저의 베이스캠프는 역시 이노다 커피.

6년 전 쿄토에서 처음 이노다 커피를 조우한 이래 저는 가능하면 이 자리로 돌아오고자 노력합니다. 이노다커피에서 만난 장면들이 저를 두고두고 끌어 당기는 이유이겠지요.

 

무사히 쿄토에서 돌아왔습니다. 횟수로는 벌써 8번째 방문인지라 '언젠가 또 오겠지'하며 아무 생각없이 돌아갈 채비를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드는 것은 제가 쿄토를 탐미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약하자면 그것은 마치 소설

금각사의 미조구치가 금각에 불을 지르고 난 뒤, 허겁지겁 뒷산에 올라 손에 든 수면제와 단도를 버리고 담배를 피면서 "살아야지" 하던 그 마음과도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역시 '미조구치의 행동은 참 무모한 짓이었어' 라고 혼잣말로 속삭이고 피식 웃으며 남은 짐들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쿄토를 방문하자마자, 이노다 커피엘 다녀왔습니다. 우선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푼 뒤, 버스를 타고 시조 가와라마치에서 내려 테라마치를 지나 산조도오리로 발걸음을 집어넣고는 능숙하게 그 곳을 향해 달려 갔습니다. 6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모습 없는 그 공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가장 최근에 방문했었던 1년 반 전에 갓 일을 배우는듯한 여자분께서 어느새 젊은 직원 두 분을 거느리고 원탁 안에 있는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젊은 직원들은 그녀의 보조를 맞추면서 둥글게 앉아있는 손님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치 예전에 그녀가 그러했듯이 말이죠. '아! 그녀가 인고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더 성장하였구나!' 속으로 축하하며 그녀에게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는 이내 주위를 둘러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이노다 커피에서는 시간은 멈춰버리는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예전 그 자리를 지키던 커피 포트라든지, 항아리라든지, 토스트기, 심지어는 물 주전자 까지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빛내고 있었습니다. 색이 바랬다거나, 낡았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마치 황금과도 같아 아무래 낡고 바래도 그 본래의 가치는 잃지 않은듯 보였습니다. 또한 이노다커피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신문을 읽는다던지, 휴대폰을 만진다던지, 혹은 동료와 얘기를 하면서 이노다커피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참 아무런 행동없이 그 광경을 지키고 있다가 문득 cafe 가 지니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cafe 를 떠올릴 때, 커피보다는 여유를 먼저 떠올립니다. 모처럼 만나는 친구와의 대화,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먼저 나와 기다리는 모습등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를 cafe 라는 공간에 부여함으로써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만들게 된 셈이죠. 즉 일상 속 커뮤니케이션의 창구로써 cafe 는 어느새 우리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cafe의 위치 변화는 곧 시장 내 성장과도 이어졌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스타벅스가 처음으로 '서비스를 판매하는 곳'으로의 공간 재창조를 부르짖으면서 성공한 이래로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채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양산하게 되었고, 덩달아 개인이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의 스몰 비즈니스 cafe 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cafe 가 한 집 건너 한 집에 이를만큼 지속적으로 확장하기에 이르자,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기도 했는데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경우에는 매장 대형화와 함께 고급화를 추구하는 반면,

소규모 업체는 '커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등을 통한 '전문화'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느쪽으로도 방향을 잡지 못한 cafe 는 사라지게 되었죠. 이처럼 cafe 의 확장을 두고 누군가는 커피 시장의 포화라고도 하며 또는 진정한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도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시장이 양적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엔 의심이 여지가 없을만큼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의 cafe 는 '일상 속 커뮤니케이션의 창구'로써의 공간으론 아직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cafe에서는 한 방향으로만 커뮤니케이션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곧 '세대의 단절'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들어볼까요? 이번 여행을 통해서도 새삼 느꼈습니다만, 일본의 cafe 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이 한 데 모여 커피도 마시며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시간을 즐기기 위한 모습입니다. 그것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나 소규모 카페등에서도 똑같이 만날 수 있는 풍경입니다. 스타벅스와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cafe 를 가더라도, 이노다커피나 오가와 커피와 같은 쿄토 지역의 cafe 를 가더라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공간에서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cafe 에서는 세대의 단절을 찾아볼 수 없었고,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이 뒤섞이며 통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cafe 는 어떤 모습인가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한 잔의 커피값으로 여유를 사는 행위'가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고 이는 자연스레 모든이들에게 공간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하지만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남아있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cafe 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 과거에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잃지 말고 현재에서 이를 받아들이며 미래에 우리 삶을 하나로 이어줄 수 있는 곳이라면 그 곳이 바로 내 cafe 이고, 우리들의 cafe 가 아닐까요?

 

저는 여기 이 cafe 에 앉아 함께 있는 모든 이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책을 읽고 스마트폰을 보며 함께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속에서 누구 하나 부자연스러워 보이질 않는 세대가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우리 같이 젊은 세대들은 늙은 세대들을 바라보며 즐거운 공상에 사로잡히고, 늙은 세대들은 젊은 세대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cafe 가 지닌 가치이자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품격이 아닐까요.

 

공간을 내어줌으로써 그 공간에 함께 있는 자들이 여유를 나눌 수 있는 곳.

 

제겐 이노다 커피가 그런 caf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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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내 H 그룹에서 운영하는 모 백화점이 '서울 소재의 아울렛을 위탁 경영함으로써 아울렛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는 기사와 함께 '김포와 송도 등지에서도 프리미엄 아울렛 개발도 진행중'이라는 소식도 함께 접했습니다. S그룹, L그룹과 함께 국내 유통 BIG 3 기업으로

분류되던 H그룹까지 백화점과 아울렛 업태를 동시에 운영함으로써 '증식적 확장'을 통한 '시장 지배력 강화'는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으로써 이들의 행보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요, 첫번째는

소비자의 소비패턴 변화를 들 수 있겠습니다. 과거 PLC (Product Life Cycle) 주기와 유사한 소비패턴을 선보였던 소비자들이 어느샌가 경계가 없이 상호 교집합된 상태의 소비를 하고 있습니다. 즉, 제품의 개발 및 보급에 의한 가격 안정성에 따라 획일적 구매를 하던 것이 오늘날에는 이에 관계없이 소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에 따른 소비패턴 중 하나를 살펴보면 일부 얼리어답터를 제외하곤 제품이 시장에서 가격과 성능 모두가 안정성을 띄고 있을 때 구매를 하게 되었지만, 요즘에는 신제품 출시와 동시에 소비자의 선호도 및 취향에 따라 소비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격 저항력이라는 방어벽이 존재했던 기존의 패턴은 점차적으로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애플 및 일부 IT 기기업체는 특히 제품 최초 출시 기간엔 '가격'을 높여 '프리미엄'을 강조하는 한편, 제품 출시일이 어느 정도 지나게 되면 '가격'을 낮춰 '보급'에 주안점을 두는 전략으로 시장 점유율을 늘려 갔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전략은 주효한 결과를 낼 수 없게 된 셈이죠. 자, 앞서 말씀드린대로 '가격'이 소비를 선택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래 예를 들어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령, 중국산 SPA 브랜드의 옷을 즐겨 입으면서도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핸드백을 드는 반면에, 독일산 수입 디젤차를 소유한 소비자가 할인마트에서 몇 백원 할인 쿠폰으로 더 가격을 깎을려고 하는 모습도 요즘에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몇 해 전, 보스턴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에서는 이러한 소비패턴의 변화를 '트레이딩 업&다운'이라는 신조어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 참조1 : 소비자의 변화 흐름 (ref. 디퍼런트 / 마케팅 3.0 / 유니타스 브랜드 매거진 中)-

 

 

 

 

위의 참조 해 둔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소비자의 성향 자체는 양분화 되면서 세분화되어집니다. 일부 브랜드에 충성하는 고객층이 생기기도 하고, 카테고리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을 선보이는 소비자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가격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있는 반면에 가격과 브랜드에는 관심없고 오직 쿠폰이나 마일리지 적립등 거래 자체를 중시하는 소비자도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소비자의 소비패턴 변화는 기업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타깃의 변화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트레이딩 업&다운 현상은 다양한 호칭으로 불려지면서 시장 내에 점차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에 더 이상 획일적인 구분에 의한 타깃 설정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심해지는 경쟁 구조에서 자사의 판매 인프라를 늘려 소비 패턴에 의한 타깃의 세분화를 맞이해야겠다는 방증이기도 한 거이죠. 그렇게 놓고 본다면 백화점을 운영하는 기업이 아울렛 업태로 진출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흐름입니다. 백화점과 아울렛 사이에서 포지셔닝된 프리미엄 아울렛도 동일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요.

 

두 번째는 시장의 변화, 그 중에서도 특히 내셔널 브랜드들의 움직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과거 국내 내셔닐 브랜드들의 비즈니스는 백화점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백화점에 입점시키는 것이 그들의 첫 번째 목표였고, 이를 토대로 자사의 브랜드를 알리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백화점 입점이 성공되면 자연스럽게 가두점 모집에도 탄력을 받게 됨으로써 비즈니스 영역을 넓혀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헌데, 08년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시장 경제가 급속도록 냉각되면서 경기가

'장기적 저성장 패턴'을 보이자 가두점 매출이 곤두박질 치게 되고 덩달아 백화점 內, 매출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국내 백화점은 대게 임대 수수료 매장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백화점도 해당 입점 브랜드들의 매출 역신장을 손 놓고 바라볼 수 없게 된 처지가 된 것이죠. 매출이 저조한 브랜드들은 백화점에서 퇴출되고, 시장에서 점차 사라지게 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틈을 파고 들어 해외 SPA

브랜드들의 국내 러쉬가 시작되면서 내셔널 브랜드들이 설 자리가 점차적으로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08년 약 5천억 규모였던 국내 SPA 브랜드의 매출액은 불과 4년 사이 280% 나 신장한 1천900억 가량이었습니다.  국내 대기업의 유통산업 연구소에서 발간한 2012년 소매업 전체 시장 전망 및 요약에 따르면 패션 마켓의 신장률이 위 도표와 동일한 시장에서 평균 5% 에 그친 것을 감안한다면 급속도록 빠르게 SPA 브랜드가 시장을 잠식하게 된 셈입니다.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SPA 브랜드들은 특히 지난 2010년과 11년 사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는데요, 유니클로의 경우에는 매출액이 전년대비 55% 의 신장률을 기록하였고, 매장 수도 65개로 늘렸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매장 수가 105개, 매출액은 7,600억 가량이라고 하니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매출 1조원도 머지 않아 달성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SPA 브랜드들의 파상적인 공세에 맞서 국내 내셔널 브랜드들도 자구책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제품 생산 방식을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로 전환하는가 한편, 더 이상 백화점 입점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자사 브랜드들의 플래그쉽 스토어 혹은 직접 아울렛 매장 및 편집매장등으로 구성하여 다양한 판매처 확보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체적으로 스탁(STOCK)을 처분할 수 있는 판매처 확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백화점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행보를 통해 위기에 빠진 시장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SPA 브랜드 런칭도 빠질 수 없겠지요. 바로 이것이 백화점의 증식적 확장을 부추기게 된 것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맞아 떨어지지 않나 조심스레 추측해보는 것입니다.

 

 

허나, 문영미 교수가 자신의 저서 '디퍼런트'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백화점의 카테고리 확장은 결과적으로 차별화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리어 악순환을 양산해낼 수 있는 위기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백화점의 입장에서 보면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하면서 초세분화 된 시장에서의 각개전투 포지셔닝 선정으로 물량 확보, 스탁 처리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기에 이유있는 행동이라 스스로 위로하겠지만, 시장 전체의 선순환을 통해 내수 시장의 활성화엔 언젠가 비수를 꽂을 수 있는 독약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시장의 흐름은 수평적 관계로 재설정되고 있지만, 이러한 행보들은 오히려 극단적 수직 관계를 양산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제품에 대한 선택폭은 넓어진다 하더라도, 시장 내에서의 선택폭은 줄어드는 부조리함도 겪을 수 있씁니다. 비윤리적 행위등의 모랄 해저드는 그 다음 문제가 되겠지요.

 

 

다시 백화점의 아울렛 진출로 돌아오면, 백화점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백화점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내셔널 브랜드들의 퇴출을 수입 브랜드로 채우고, 사입된 수입브랜드의 옷을 자체 아울렛에서 판매하며, 일부 내셔널 브랜드들에게서 행사 상품을 받아 값싸게 파는 것으로 백화점 자체의 이미지를 버리지 말고, 과거 유통 피라미드의 최상위 계급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는 것과 동시에

수평적 관계로 내려오면서 내수 경기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내셔널 브랜드들과의 협업관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 마인드에 랜드마크로서 백화점, 구색을 갖춰 생색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할 수 있는 백화점이야말로 '의식 있는 소비자'를 위한 행동이 아닌가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국내 내셔널 브랜드들의 생태계는 밝아지고 있는듯 합니다. 특히 소규모의 업체들이 서울을 기반으로 하나씩 자리잡고 있는듯 하여 너무 좋습니다. 그들의 제품 퀄리티 자체는 말할 것도 없구요.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소규모 업체들은 자신들의 철학과 정체성을 지니면서 지속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백화점 입점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상품을 판매하는데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인간의 서비스
고객은 상품이라는 유형의 존재를 매입하지만 그것을 매입하도록 유도하는 서비스라는 무형의 존재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족감을 낳는다. 내가 늘 판매방식에 포함시켜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무리 디자인이 좋은 가전제품이 이다고 해도 역시 거기에 얽힌 스토리나 구입할 때의 서비스가 없다면 단순히 디자인이 좋은 가전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 나가오카 겐메이, D&DEPARTMENT CEO -

 

 

무형의 가치로서의 서비스는 비단 좋은 제품만 팔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족감을 낳을 수 있는 생태계가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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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위에 희망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께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합니다.

 

 

 

 

 

합리적 사고의 이기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보름이 훌쩍 지났습니다.

참사가 일어나는 날 아침 출근길에 처음 뉴스를 접했을때만 해도 '요즘 같은 시대에 재앙이라고 불릴만한 인재가 전쟁말고 또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승객들은 재빠르게 구조될 것으로 믿었고, 배가 가라앉은 원인이 규명될 것이며, 일부 관계자들이 법적 구속력에 의해 책임을 지는 것으로 종료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만, 세월호는 여전히 바다 속에 있습니다. 구조되지 못한 승객들을 대부분 실은 채 말입니다. 사태의 심각성이 가중되면서 온 나라가 비탄에 잠겼습니다. 터져나오는 탄식은 가실 줄을 모르고 일말의 희망조차 사그러드는 아지랑이처럼 점차 기운을 잃은 채,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합니다. 차라리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따라 '사건의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도록 관망하며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한편, 유가족들과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가지면서 이 슬픔을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만 각종 언론과 개인이 인터넷 상에서 양산해내는 뉴스와 루머가 되려 '사건의 진실'은 쫒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듯 하여 애석하기만 합니다. 굳이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뉴스와 루머에 대해선 모두들 잘 아시겠지요.

 

이러한 뉴스와 루머가 심각한 수준에 빠져 있다는 것이 왜 애석한 일이냐면 이것이 실존하지 않는 공포와 위험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부각시키고자 하는 '익명의 존재감'이 이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지요.

기술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소위 '네트워킹'되면서 모든 개인이 수직에서 수평으로, 고정되지 않은 채 횡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목표나 결과에 집적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 셈이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가능해졌습니다. 스스로 위안을 삼고, 즐거움을 발현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세월호에 담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모두 세월호의 결과에 접근할 수 있으니, 개인의 주관적 견해가 객관적 지표로 탈바꿈하게 되며 이로써 모두들 '세월호의 결과는 이러이러하다'는 식의 변론을 내뱉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익명의 존재감'이 불특정 다수가 되는 순간, 그 결과가 사실로 규정되는 오늘날에

정부 또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합리적 사고에 의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위험한 포퓰리즘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익명의 존재감'은 결코 드러나지 않은 채, 거짓을 진실처럼 언급하고 규명되지 않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악순환에 의해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점차 위험의 뫼비우스 띠를 양산해내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타인을 위한 합리적 사고가 나를 위한 합리적 사고로 점철되면서 점차적으로 이기화(利己化) 되면서 우리 모두는 수평적 사회에서의 개방화가 아닌 폐쇄화를 지속하는 꼴이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합리적인 사고를 먼저 버려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버림으로써 쓰임의 용도로 변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오늘도 저는 어제의 잘못을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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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작은 회사부터 고민해야 한다.

 

 


 

 

 

  얼마 전, 국내 모 일간지에 세계적인 석학이자 영국 리즈 대학교의 명예교수이기도 한 지그문트 바우먼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뉴욕 타임즈 일요일자 신문 기사에 하나에 담긴 정보가 18세기에 살던 가장 똑똑한 어른이 평생 흡수하는 정보보다 많은 시대" 라고 언급하면서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가 소위 '정보화 시대'의 도래를 이끌었음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정보화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정보들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서 어찌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18세기 가장 똑똑한 어른이 평생 흡수하는 정보보다 많은 시대라는 것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겠지요.

 

  그렇다면 세계화는 무슨 의미일까요?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해당 단어에 대한 의미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으며 정치와 문화, 교육 등 개인과 사회집단이 국경이나, 영역에 제한 없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세계화(世界化,Globalization) 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이 세계화를 만들게 된 것은 기술의 발전에 의한 정보화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클릭 한 번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물건을 구할 수 있고,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섭렵할 수 있으며, 소위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poration)이라 불리우는 회사가 세계 여러 나라에 지사를 두고 해당 지역에 자회사를 두고 시장 활동을 하는 것도  세계화를 설명할 수 있는 주된 근거이겠지요. 이렇게 보면 세계화라는 것은 참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이를 지켜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듯 합니다.

 

  지난 08년 미국에서 일어난 리먼 브러더스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위축 경제의 토대를 형성시켰고, 이를 통해 미국 시민들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시민들을 위험에 빠트리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일부 국가는 위 사태로 인하여 재기불능의 상태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장악에 따른 서구열강의 경제적 압박이 시작된다는 소식도 들림으로써 해당 지역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이 세계화는 장점과 더불어 단점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 단점은 폐해로써 고스란히 우리들 생활 속에 남겨지게 되는 것이지요.

다시 지그먼트 바우먼의 인터뷰로 돌아가보면, 그는 이 세계화의 폐해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거가 무색할 정도로 거듭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옛 방식이 빨리 노화되고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데에 반해 새로운 활동, 즉 기술의 발전에 대응할 수 있는 '명확한 비전'은 여전히 개발되지 않은 상태고 그리하여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혼돈의 쓰나미로 불리는 간극'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고 하면서 이를 궐위의 시대, 즉 인터레그넘의 도래라고 부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레그넘의 도래는 세계화 속의 인간들에게 정보 이면에 숨겨진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지요.

 

  그는 또한 이 궐위의 시대가 만든 불확실성은 인간 관계에 있어 확연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불확실성의 증가가 우리 시대 또다른 불안감을 엄습하게 하면서 인간의 유대관계가 애시당초 부숴지기 쉬운 상태로 받아들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유대감 변화는 특히 소셜 네트워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실제로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을 때는 두 사람의 동의가 모두 필요하지만, 해당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혹은 자신과 다른 성향을 보일 때는 한 사람의 결정만으로 친구관계를 끊게 되고 이로써 우리는 철저히 개인화, 사회 내에서의 고립을 양산하게 됩니다. 사실, 개인화는 자유와 변화를 모토로 삼고 있는 세계화에 적합한 유형이긴 합니다만 돌이켜보면 개인이 모든 자유와 변화를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이 쌓이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벌어진 일을 개인이 감당하기 때문에 그 짓눌리는 책임감으로 인하여 관계를 엮는 연결고리는 약해질 것이고, 따라서 안전감 결핍은 계속 생성이 되는 것이겠지요. 개인의 안전감 결핍은 고스란히 개인이 살고 있는 지역 내에서의 다양한 문제들을 양산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일어난 문제는 다시 개인에게 귀속되어 개인은 더 이상 책임을 질 수도 없는 '고립무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즉 위험과 고통의 내재화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지는 것이니 개인은 세계화가 거듭될수록 생존할 수 있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일수록 개인의 관계는 내일을 지향할 수 있는 무기가 되고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무방비 상태로 맞이하거나, 국가의 책임으로 돌려 개인의 책임을 지운다면 남아있는 관계마저

불안감이 모두 앗아 가버릴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세계화의 시스템이 변하는 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시스템으로 변화시킬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그 시스템을 변화시키는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치인은 정치를 잘하고, 경제인은 경제를 살리고 시민은 그러한 정치와 경제의 틀 속에서 잣대를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선 '나'부터가 시작해야한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있는 지역에서 나와 같은 생각으로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관계가 회복되고, 이를 통해 지역의 생존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역의 아주 보잘 것 없는 나이기도 하고,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만,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액체화되고 있는 관계를 회복시키고 세계화가 가져다 준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에 휩쓸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만들어 제가 있는 지역이 성장할 수 있는 미래.

 

  어찌보면 보잘 것 없는 미래라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무기이자 희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작은 회사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오늘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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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대기업에 근무하던 신입사원의 <퇴사 이야기>가 세간의 화제가 된 모양입니다.

회사생활에서 '재미'와 '열정'을 찾지 못해 퇴사를 결심하고는 자신만의 '이카루스 프로젝트'를 실행(아마도 세스 고딘의 이카루스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나 봅니다) 하고자 하는 그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은 댓글과 공감을 통해 격려를 한 모양입니다. 하긴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울 때에 모두가 부러워한다는 대기업의 문을 박차고 나온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겐 적잖은 충격이었음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최대 고민은 아마 '취업'일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길게는 20년 가까이 공부를 하고,

남은 시간도 쪼개어 '스펙쌓기'에 골머리를 앓는 것이 오늘날입니다. 그들의 노력은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할 것이고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가능할 때에 소위 '큰 물'에서 놀아보자고 다짐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히 '대기업 취직'이 최종 관문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보상받아야 할 '당위성'이 선택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의 입장에서 '큰 물에서 사는 물고기'는 이유 있는 목표이자 꿈일 것이며 반드시 이뤄내야 할 '성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과를 통한 성취감은 비단 큰 물에서만 이뤄지는 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성취감은 작은 물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물은 큰 물에 비해 고이기 쉽습니다. 물은 본디 흘러내려야 그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는 물고기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에 작은 물에 사는 물고기들은 끊임없이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고 물이 고일 수 있는 모든 환경에 대해 직시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부단히 갈고 닦습니다. 작은 물일수록 사는 물고기도 적을 수 밖에 없으니, 그들은 설령 자신이 맡은 중책이 있더라도 여러가지의 업무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내가 맡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생존이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생존의 긴박함이 걸려있는 그들에게 있어 작은 물에 함께 살아가는 물고기들은 경쟁자가 아닌 반드시 필요한 존재, 하나하나의 린치핀이 되는 것입니다. 한 명이라도 없으면 대체가 불가능한 존재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곳에서 서로의 중요함을 일깨우고 함께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큰 물에서 사는 물고기들은 린치핀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쟁자들 때문에 되려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작은 물에 사는 물고기의 수보다 큰 물에 사는 물고기가의 수가 훨씬 많을테니깐요.

물이 고여 죽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자신을 누군가가 대체할 수 있다는 걱정은 최초에 큰 물에서 살고자 노력했던 그들의 당위성을 배신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을 위한 삶을 지향하게 되고, 자신의 업무를 통한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도 합니다.

 

"흐르는 물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산에서 내려와 대지를 적시고 바다로 이어가는 물의 흐름을 알듯, 우리는 지금 당장 어느 물에서 놀고 있는지를 먼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웅덩이에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몸으로 물길을 내어 이어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냇가를 만날 수 있고 하천을 돌아갈 수 있으며 보다 큰 강으로 유입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쓰는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성취는 자기 자신으로 남는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철학자이자 시인)-

 

그리고 저 또한 늘 작은 물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자기 자신으로 남아 더 큰 물로 나아가길 희망하며 부단히 꼬리를 흔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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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오늘 고객사의 직원분께서 전화가 와 현수막을 달아야 하는데 혼자서 역부족이다라고 하더군요.

흔쾌히 달려가 세찬 바람을 뚫고 무사히 걸 수 있었습니다. 대형 현수막의 경우에는 사실 크레인을 불러야 하지만 비용절감 차원에서 함께 달았고 손은 약간의 쓰라림이 있지만 연신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직원분 때문에 괜스레 마음이 찡했습니다. 혹자는 회사의 대표가 뭐 그런 일까지 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저는 제가 일을 하는 내내 늘 먼저 달려가 저와 함께 일하는 이들을 위해 먼저 노력하고 싶습니다. 그들과 함께라야 비로소 나 다움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고 그들과 함께라야 좀 더 큰 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지 않겠습니까. 퇴근 시간전에 잠깐 글을 쓰고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벌써 1시간이 훌쩍 넘었군요. 요즘 글쓰는 시간이 예전만 못해 감각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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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를 두고 흔히 '똥차'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의 형님께서 처음 태어난 것이 1995년도이고 저 또한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정확히 25개월 전에 태어났으니 시나브로 흘러가는 세월의 무성함만큼이나 나이를 먹어버렸습니다. 인간 세계 가수의 노래제목처럼 '잊혀진 계절'의 한 축으로

남은 생애를 마무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아래, 모처럼 날씨가 풀린 겨울의 저녁에 주인님과 함께 세차를 하러 갔습니다. 며칠 전, 겨울비가

내리면서 축축함과 함께 놓인 빗물 자국이 신경쓰였는지 아니면 차량 내부에 먼지가 많았는지 주인님께선 '세차, 세차'를 입에 달고 사셨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세차'를 외친 뒤 약 1개월만에 세차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주인님은 미리 준비해 둔 500원짜리 동전을 코인기에 넣고 맑은 물로 골고루 제 몸을

적셔줍니다.이윽고 브랜드도 알 수 없는 중국산 자동차 전용 세제로 제 몸을 닦습니다. 이내 코인기에서

소리가 나자 주인님의 손놀림이 갈수록 빨라집니다. 다시 맑은 물로 행궈내고 물기를 닦기 위해 청소기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사실 동네 세차장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던지, 스팀샤워를 하고 아주 고급스러운 배스클리너로

몸을 닦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세차를 하기 며칠 전, 주인님께선 여친님과 함께 백화점을 방문하셨다가 지하에 있는 스팀 세차장에서 저를 세차하겠노라

말씀 하셨지만 너무 비싼 세차값이 발걸음을 돌린 적이 계셨습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웃음) 그래도 주인님과 오랜만에 세차를 하고, 정성스레 물기를 닦아주는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 '늘' 감사해하며 주인님의 안전을 책임지고자 합니다. 그렇게 주인님께선 물기를

온전히 닦아내고 안에도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시며 청소기를 돌리셨습니다. 마무리는 언제나 늘

물티슈로 대쉬보드와 센터페시아쪽을 말끔히.

 

뿌듯해하시는 주인님께선 세차를 다 하신 뒤, 제 앞으로 다가오시더니 크롬 도금으로 된 프론트 그릴과

엠블럼을 빤히 쳐다보시고 사진도 한 컷 찍어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준대형 차량의 시초로써 너의 강직함 모습은 늘 내게 있어 영감을 주는구나. 오늘도 잘 부탁한다."

 

 

사람들은 저를 두고 흔히 '똥차'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허나 저는 요즘 차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모습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안개등 위치에 시그널 램프가 있고 헤드램프 옆에 안개등이 있습니다.

제 뒷모습은 디자인 모티브는 저의 아버지격인 정몽구 회장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사항이기도 하구요.

요즘도 보면 제 동생뻘인 그랜져 TG 나 그렌지 HG 녀석들도 저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심장격인 엔진은 시리우스라고도 불리우는데요 윙윙거리는 독특한 엔진음, 부드러운 작동감등은

지금 차량의 엔진등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당시 엔진으로 146마력의 힘을 지니고 있어

최근 나오는 쉐보레사의 말리부보다 좀 더 힘이 좋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저를 두고 사람들이

'똥차'라고 표현하면 주인님께선 늘 격분해하기도 합니다.

 

 '이 차는 똥차가 아니다. 진정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몇 안되는 차다. 새끼 손가락만으로도 핸들을 돌릴 수 있는 EPS 시스템은 요즘 차량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옵션이다. 고속에서는 안전감을 위해 핸들의 무게가 올라간다. 내 차를 몰다 동급의 다른 차를 몰면 이게 파워 핸들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고 핸들의 무게감이 내 차에 비해 못해 이것이 과연 준대형 세단인지, 소형차인지 알 수 없다. 그래, 내 차는 준대형 세단이다. 똥차라고 말하지 마라. 네 차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해주었더냐.'

 

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지난 10여년 간 주인님과 함께 했던 기억만으로도 감흥이 벅차오릅니다. 10만킬로에 달하는 거리를 함께 이동하면서 늘 주인님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고, 언제 어디서든 주인님과 함께 달려온 시간들은 제가 태어난 이유를 각인시켜주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동고동락하던

시간 속에서 자동차 정비소에서도 '특별한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였고, 소모품을 제외한 나머지 부속품들도 별다른 교환없이 꿋꿋하게 하루 하루를 보내는 제 자신이 너무나도 뿌듯합니다.

 

허나, 언젠가 주인님께서 가족이 생기고 식구가 하나 둘 늘어나게 될때즈음엔 제가 주인님과 이별하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설령 주인님께서 저를 폐차하신다고해도

그것이 곧 저의 숙명, 지난 날을 그리워할 뿐 다가오는 날에 대한 어두운 미래는 제게 있어 아무것도 아닌 셈입니다. 그 날이 오게 된다면, 단지 그런 날이 다가오게 된다면 그때는 저를 마주하고 '저와 사랑한만큼 살았고, 그 만큼이 인생이었노라' 라고 한 말씀만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인님께서

새로운 차량을 인도 받으셨을 때, 그 차 앞에서 주인님을 잘 보살펴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만 주셨으면 합니다. '똥차'인 제게 '똥차 취급 하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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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는 사실 '똥차'다. 요즘같이 하루가 멀다하고 신차가 쏟아지는 형국에 10년 이상 된 차량이 '똥차'가 아니면 뭐가 똥차란 말이더냐. 비단 내 차 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떤 브랜드건, 어떤 차종이건 요즘 사람들 기준에서 '날렵하게 생기지 않았거나', '독일제, 이태리제와 같이 수입차'가 아닌 이상에야 다 똥차다. 헌데 웃긴것은 수입차는 오래되어도 '클래식'이라는 명성을 달 수 있다는 것이다. 20년 이상된 폭스바겐 골프를 모는 지인이 더 이상 부품을 구하지 못하여 폐차한다는 글에 사람들은 '진정한 클래식이 사라졌다'고 운운하며 이를 추모하는 꼬라지 하곤.

 

각설하고 똥차를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있다. 사실 작년에 차량을 바꿀 기회가 있었다. 회사일때문에 장거리 출장이 많은터라, 독일 V 사의 G를 사고자 마음도 먹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기로 결심하여 차를 바꾸는 것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음을 좀 단단히 먹으면 좀 더 큰 차량이나 아예 작은 차량으로 바꿔 탈 의향도 적잖아 있다. 허나, 왠지 내 차가 오래된 이유만으로 바꾼다고 하면 뭔가 인색하고 옹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전히 내 차는 잘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초 거금을 들여 바퀴도 다 갈고 이번엔 타임벨트만 갈고 얼라인먼트 체크에 바퀴쪽 베어링만 변경하면 2년 이상은 무난히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현재 16만 킬로미터를 달리고 있으니, 20만 킬로미터까지 채운다고 가정하면 약 1~2년 사이는 별문제 없이 탈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0년 이상 동안 이 차는 각별한 존재였다. 아버지께 처음 차를 물려받았을 때, (우리 兄도 몰래타던 그 차를!) 이 차를 몰면서 갖은 폼이란 폼은 다 잡고 다녔다. 혼자 동해바다를 다녀오기도 하였고, 남해바다도 다녀오기도 하면서 가고자 하는 곳은 다 갈 수 있었고, 그때마다 사고 없이 나를 무사히 바래다준 차이기도 하다. 그런 내 차를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바꾼다고 하면 이 세상에 바꾸지 않아야 할 대상은 어디있을까. 마누라도 시간이 지나면 바꿔야 하는건가.

 

나는 내 차를 나만의 클래식으로 만들고 싶다.

내가 나의 일을 클래식의 반열에 올리고자 노력하듯 그런 마음으로 남은 나날동안 내 차와 함께

동고동락 하겠다. 이탈리아어를 행진곡을 뜻하는 내 차는 여전히 나와 행진을 하고 있을 것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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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Luxury)스러움'글을 쓰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해선 '말하는 행위'로도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상대방, 즉 청자(聽者)가 있어야 그 행위가 비로소 완성되는 반면, 글을 쓰는 행위는 지금

당장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필기도구와 함께 종이만 있다면 언제라도 행위가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완성'이라는 단어를 표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이 행위는 큰 축복이며 호사스러운 산물인 셈인 것이죠. 요즘에야 필기도구와 종이가 없다 하더라도 인터넷이라는 공간 속에서 언제든지 글을 쓰고, 심지어는 채팅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상대방이 온라인 상에 로그온이 되어있기만 하면 말하는 것을 키보드로 쳐서 말을 하면서 동시에 글을 쓰는 행위를 할 수 있다지만, 이 글을

읽고 계신분들 중 과연 그것이 완전한 글 쓰는 행위라고는 생각치 않으시겠지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저는 글을 쓰는 행위에 꽤나 능숙한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초등학교 시절 <교내 경필 쓰기 대회>에서 곧잘 상도 수상하기도 하였고  중학교 시절에는 서예도 배우면서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붓으로 글을 쓰고, 난을 치는 것도 흥미로웠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육 방송등에서 사은품으로 나눠주는 다이어리에 일기라든지, 친구들에게 쓰는 격려용 글등을 쓰면서 '글을 쓰는 행위'가 거부감 없이 자리를 잡지 않았나 사료됩니다.  글을 쓰는 행위가 부담스럽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필기도구나 노트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건축을 전공하던 형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스태들러의 엘로우펜슬이라던지, 로트링사(社)의 아트펜등을 사서 쓰기도 하였고, 개인적으로 글쓰기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8~9년전엔 파버 카스텔의 이모션 트위스트 우드 볼 포인트 펜으로

'시'나 '소설'따위를 쓴다고 여러권의 원고지를 날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쯤되니깐 잊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황금기의 번영에 종지부를 찍을 '동남아시아 여행기록'을 위해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64 볼 포인트 펜을  여행 중 면세점에서 구입을 하였는데요, 구입한 지 보름만에 방콕에서 하노이로 떠나는 에어 아시아 비행기에서  노트와 함께 분실, 지금쯤은 누군가에게 입양되어 본래 주인인 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전락해버렸을테지요. 지금은 소중한 분께  하사받은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64 만년필이 주력 필기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만 대중 친화력이 없는 만년필의 특성상 파버 카스텔 볼 포인트펜과 함께 제 글쓰기의 즐거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던 볼펜은 따로 있는듯 합니다. 하긴 저 뿐만 아니라 거의 전 국민이 한 번쯤은 써봤을테죠.  1963년 5월 1일 처음 태어나 지금까지 약 35억 자루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이자 대한민국 미니멀리즘 제품의 프로토타입격으로 손색이 없는 볼 포인트 펜, 심의 수명이 다하면 볼 포인트 펜의 바디 끝자락을 라이터로 주둥이를 녹여 벌린 다음, 몽땅 연필을 끼워쓸 수 있는'절약 기능'까지 포함(?)된 모나미사(社)의 모나미 153 볼 포인트 펜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올해, 탄생 50주년을 맞이하여 1만개만 특별 제작된 모나미 153 볼 포인트 펜 리미티드 에디션이 출시되었습니다.

 

 

 

비록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디자인이라든지, 리미티드 에디션에 걸맞지 않은 제품 사양이 몽블랑이 가지고 있는 그것과는 견줄 수 없을만큼 초라하다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리미티드 에디션의 탄생은 반(半)세기 동안 우리 시대를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한 기존 153 과 함께 우리 시대 글을 쓰는 행위를 지향하는 이들을 위한 오마주(Hommage) 가 아닐까 합니다. 당연히 탄생은 축복받아야 마땅하며 우리 시대 제품들이 지녀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역할을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는 고귀한 선물인 셈이죠. 그리고 오늘 이 제품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잊고 지냈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존재인 우리들은 정보의 범람을 맞이하면서 '필요치 않은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고 '필요한 정보'는 약간의 수고를 더하면 구할 수 있는 '편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편의는 우리의 마음을 안일하게 만들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들은 기억의 저장공간에 박아둔 채 바라보지 않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통의 이데올로기이자 편의의 팍스 로마나와도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대가 지속될수록 잊고 지내는 가치는 산재해질 것이고, 원하는 것만 통하는 단방향 중심의 사고가 확대되어질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제품' 이 아니라

'제품'이 지니고 있는 가치일 것인데, 진정 원하는 것은 퇴색되고 빈 껍데기만 남게 되는 셈이죠. 그리하여 그 시대가, 보통의 이데올로기가 지속된다면 우리가 추구하던 '보통' 자체도 어느샌가 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보통의 존재가 보통을 망각하기 시작했을 때, 과연 우리에겐 뭐가 더 남아있을까요.

이 한 자루의 볼 포인트 펜을 사면서 저는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뭐든지 지나고 나면 그 가치에 대해 다시금 깨닫고 잊고 지내던 것을 새삼스레 꺼내올 수 있습니다.

사용하기 편할 뿐더러 값이 싸서 잃어버려도 쉽게 잊을 수 있는 모나미 153 볼 포인트 펜을 상기시킨 오늘, 저는 이 리미티드 에디션을 구입함으로써 '보통의 이데올로기'에서 버텨 나갈 수 있는 무기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말을 아끼고 생각을 다시금 정리하여 혹시나 잊었던 무언가를 끄집어내 허공 속에 뿌려둔 채, 진정으로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쓰게 되는 '글을 쓴다는 행위'를 잊지 않을려고 합니다.

 

 

'보통의 이데올로기'에서 마주하는 가장 '보통의 존재'.

 

 

역시 우리 시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스러움은 역시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닐까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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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실 모나미 153 볼 포인트 펜의 한정판 출시를 듣고 나서 이를 마케팅 시각으로 풀어 설명을 하고자 했지만, '왜 이 제품이 탄생했는지, 그리고 왜 소비자들이 이 제품에 순간적인 열광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니, 글이 다소 무거워지고 생뚱맞게 흘러간듯 합니다. 그래서 제품에 대한 간략한 부연을 덧붙이자면 모나미는 불어인 mon ami ( 내 친구)라는 뜻이고 제품명에 기입된 153 은 (주)모나미 송삼석 회장의 회고록 <내가 걸어 온 외길 50년>을 살펴보면  신약성서 요한복음 21장 11절에 나오는 구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에서 착안하여 "'153'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따르면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였다...(중략)...하나님은 내게 '153'이라는 숫자를 통해 기업인이 일생을 통해 반드시 지켜야 할 상도를 일깨워주셨던 것이다"라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모나미 153 볼펜은 대한민국 최초의 볼펜으로 반세기동안 약 35억 자루 이상이 판매가 되었고 검, 적, 청색의 3가지 잉크로만 구성되었으며

최근에는 두께 1.0mm 의 노란색 153 볼펜과 함께 캡 타입의 153 STICK 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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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부터 시작된 회사의 프로젝트, 즉 신규 점포 오픈도 중도하차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서울과 천안, 대전, 양산, 경주까지. 여러 지방에서 짧게는 일 주일, 길게는 3개월 동안

번걸아가며 일을 했던 다소 '바쁜 삶'은 사직서가 수리된 지난 11월 30일부터 오늘까지, 약 5일의 기간을 거치면서 '커피'와 '수면', '책' 그리고 '만남'을 통해 온전히 보상받고 있습니다. 꽤 행복합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했던 보상의 목록들은 이전에도 제가 취했던 시간이었기에 혹자는 과연 '행복의 조건'으로 불리울 수 있느냐 반문할 수도 있지만 동일한 형태를 취하면서도 마음의 안정성은 여유라는 공간 안에서 꽤나 균형을 잘 잡고 있으니, 이전의 동일함은 불균형이라고 판단했을때는 지금이 보다 행복하다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난 7월쯤이었습니다. 그 무렵, 우연히 헤드헌터를 통해 들어온 기업과의 인터뷰가 여러차레 있었습니다. 최종 '합격'에 대한 의사를 고사한 건 아이러니한 선택일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이를 통해 '꿈'을 상기시킬 수 있었고, 지금 제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으니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사료됩니다. 허나, 여전히 제가 중심이 되어 진행하던 '양산지역 신규 점포 오픈'이 진행중이었고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그땐 섣불리 일을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8월 하순무렵, 점포는 무난히 오픈을 하였고 곧바로 뒤를 이어 진행되던 '경주 지역의 건'도 부분적인 오픈입니다만 11월에 진행되었으니 남은 일은 그 동안의 업무들을 한 데 모아 후임으로 오시는 분께 인수인계를 해주는 것 밖엔 없었습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9월부터 약 2개월동안 사직서를 3차례나 제출하여 겨우 수리된 것이니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지만, 임원분들께선 지속적으로 '생각할 시간'에 대한

회유를 지속하였으며 그때마다 약간의 '망설임'도 적잖아 가졌었습니다. 내년에도 이미 울산과 진주지역에 대한 신규 점포 오픈이 계획되어 있었고 진주지역 같은 경우에는 이미 시장조사라든지, 오픈 마케팅 기획까지도 1차적으론 다 보고가 된 상태여서 '내가 그만 두면 과연 누군가 이 일들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였습니다.

 

 

두 개의 '기회'가 제 앞에 주어진 셈이었습니다. 하나의 기회는 회사에서 머무르면서 현실적인 수입에 대한 보장과 회사내에서의 성장, 그리고 신규 점포 오픈이라는 달콤한 업무가 주어졌다면 또 다른 곳에서의 기회는 개인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 책을 읽고 쌓아두었던 지식들을 지혜로 변환할 수 있는 꿈같은 평생의 과업이 주어진 셈이었습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제게 주어진 것은 개인의 시간, 그리고 평생의 과업이었습니다.

고민은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을 제공하지만, 지체하면 선택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기에 그만두기로 하였습니다. 평생의 과업이 지금 당장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이를 당장 성공시켜야한다는 강박 또한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평생의 과업이기 때문에 언제든 찾아오는 인생의 기회에서 제가 선택해야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단지 제가 꿈꿔왔던 과업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저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를 끝맺고 하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실도 알아보고 있고,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파트너도 찾아보고 있습니다. 분명히 저와 가치관이 비슷한 분들을 만날 수 있을테고 전 그들과 함께 과업을 하나씩 만들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땅에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나기 위해선 땅을 짚고 일어서야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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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유레카 형님. SAS 님. 동생분님...그러고 보니, 늘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3분 다들 잘 계시죠?

페이스북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블로그에선 도통 활동을 하지 못해 안부 여쭙는것도 쉽지만은 않네요. 이제 얼마남지 않은 2013년 한 해, 갈무리 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제 블로그에서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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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자기전에 누워서 읽고 잠들어야지 했는데 1시간이 조금 넘어 책을 다 읽어버렸습니다.

김영하씨의 소설은 그리 즐겨 읽진 않습니다만, 얼마전 서점에 주차권을 받기 위해 들렸다가(K문고 플래티넘 회원은 하루에 한 번, 2시간 K빌딩 무료 주차를 할 수 있습니다만, 헌데 정말 그것말곤 혜택이라곤 없습니다^^) 1층 신간코너에서 아주 벌겋게 눈에 띄길래 뭐지하며 다가갔다가 마침 책 두께도 적당하고 자기전에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 없어 한 권 샀었습니다. 


김영하씨의 소설의 많이 읽진 않았습니다만, 그의 작문(作文) 능력은 예전에 읽었던 산문집 여행자;하이델베르그에서부터 뛰어나다는 호평을 지니고 있었기에 겉표지만 보고 책을 구매한 것이 사실입니다.

허나, 통상적으로 다 읽은 책의 경우에는 머리속에 약 1주일 정도는 남아있는편인데 이 책은 전혀 기억이 남질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의 내용이 정확히 뭐 어떤 지침을 지니고 있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루키의 그것을 일꺠우면 적절한 위트, 무책임이 감도는 언어적 선택, 전후좌우가 잘 매듭지어져 있는 플롯의 힘등이 느껴지는데 반해 앞뒤구분이 전혀 되지 않는 이야기 전개거리, 생각을 해야만 퍼즐을 맞출 수 있는 수동적인 관계등이 아마도 제 머리속에 이 책의 내용을 주입시키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 읽고 바로 그 다음 날, 하루키의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으니 더욱 더 그렇겠지요.


허나, 작가는 기억력을 잃어가는 살인자를 위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면 참...

소설가들은 정말 주인공이 되어 글을 쓰는가보구나 동정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삶이 늘 극 중 대분상 놓여있는 아슬아슬한 가짜처럼 보일수도 있겠거니 하며 말이죠.



그나저나,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건 어찌된 영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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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교토

2013.07.31 01:18 from ON THE PLANET/JAPAN






그 방면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티브이에 나와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어.

46억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구에서 그 역사의 깊이 만큼이나 범접할 수 없는 어휘들로 구성된 말을 내뱉는데 그 이론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지 뭐야?

반대편에서 다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버럭 화를 내며 그 이론은 틀렸고, 자기가 주창한 이론이 맞다며 또다시 마리아나 해구만큼이나 깊은 생각을 자아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단어들을 탄생시켜놓는걸 보면서 '이야~ 이 사람들은 정말 똑똑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지뭐야.


뭐? 응? 듣고 있어? 뭐라고? 네가 왜 좋냐고?


지금 그리로 갈께.



-소설, 교토 中-


마음 한 점 덥썩 썰어다가 노릿노릿 구워 함께 나눠먹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기다려!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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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프라이탁, 1993년 그래픽 디자이너인 마커스, 다니엘 프라이타크 형제는 '비가 와도 사람들이 자전거 여행을 즐길 수 있기 위해 들 수 있는 가방'을 만들고자 구상하던 중 타포린 소재의 트럭 덮개, 중고차 안전벨트, 자전거 바퀴의 튜브를 이용하여 그들이 원하던 가방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2008년


일본 교토를 처음 방문하였을 때였다. 늦가을이라 약간 쌀쌀한 기운도 있었지만, 걸으면서 교토의 고즈넉함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날이었다. 여행 3일차 되던 날,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려 산조도리의 이노다커피를 방문하였다. 자전거를 앞에 세워두고 라운드 바(Bar)로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곤 옆사람과 잠시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곁눈치레로 고개만 끄덕거린 뒤, 곧바로 어떤 가방에 시선을 훔치게 되었다.


2010년- 1


D&Department 의 오너이자, 일본의 유명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자이너 함께하며 걷다'를 읽고 있던 중, 페이지를 넘기다 나가오카 겐메이씨의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분명히 어디서 본 가방이었고, 그 가방을 알고 있노라 생각했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불현듯 스쳐가는 기억의 단편들을 응집력 있게 추스리고 단단하게 만든 다음, 비로소 2년전 교토에서 본 그 가방이었음을 직감했다.


2010년 - 10 & 11


예기치않게 첫 직장에서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또다시 교토로 갔다. 테라마치 상가를 지나가던 중

어느 편집매장에 들렀고, 거기가 프라이타크 가방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방의 가격은 약 2만엔, 애석하게도 그때는 카드를 가지고 가지 않았었다. 현금을 사게 된다면 앞으로 남은 4일간 나는 노숙을 하게 될 판이었다. 그 다음달, 교토에 또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때는 지인분들의 관광가이드가 우선인지라 거기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2010년 - 12


기회가 왔다. 컴퓨터를 열고 프라이타크 홈페이지로 접속했다. 스위스 프랑의 위엄은 대단하였다.

물론 비자카드의 그 능력에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었다. 약 10분 가량 지났을까. 이미 결제는 완료되었고, 앞으로 보름 이내에 나는 비로소 프라이타크 가방을 가질 수 있었다.


2013년


아주 소중한 이에게 프라이타크 가방을 선물할 수 있었다. 약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에서도 띄엄띄엄 그 가방을 살 수 있는 공간이 열리게 되었고, 3년전보단 아주 쉽게 그 가방을 살 수 있었다.

그녀는 물론 프라이타크 가방을 아주 좋아한다.



(...)


한 가방이 이렇게 내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리고 그 만남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나는 여전히 이 가방에 대해서만큼은 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가방을 메고 다니면 그것은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 되는 듯 하고, 예술의 미학을 잘 아는 사람이 되기도 하며 진정으로 세상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때론 내 자신이 대견하게 보이기도 하고, 때론 그 가방을 소수의 사람들만이 공유한다는 사실에 다른 세상에서 살다가 온 것 같은 이방인이 되기도 한다. 한 가방이 존재함으로써 수 많은 가방과 다른 가치로 재탄생되어지고, 이 다른 가방을 메고 있는 자신 또한 전혀 다른 가치적 존재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런 나에게 이 가방과 관련된 책의 출간은 무척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위의 두 책은 모두 프라이타크에 관련된 책이다. 한 권은 프라이타크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엮어 프라이타크가 가진 또다른 모습들을 성찰할 수 있는 좋은 의미가 되는 시간을 주는 한 편, 또 다른 책은  프라이타크를 메고 다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프라이타크만의 브랜드 매거진이다. 사실, 이 가방에 대한 존재가치가 이제서야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이슈화되는 현상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어찌보면 이러한 이슈의 성립이 사람들에게 프라이타크가 본래 가진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고 그저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잇 아이템'으로 전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프라이타크를 취급하는 이른 바, F-dealer 들이 대한민국에서도 많아지는 한편, 그들의 프라이타크 가방을 판매하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노라면, 그 우려는 더더욱 커지기만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책들의 출간은 반길만한 일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가방을 사게 되면서 그 가방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고, 모르고 있었던 가방에 대한 진실과 가치적인 습성들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브랜드는 '브랜드화(化)'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매거진 B 에서 책의 말미에 이런 카피를 쓰고 있다.


여기 사람이 있고, 군중이 있다.


누구나 가방이 있지만, 서로의 가방은 다르다.


다른 가방과 프라이탁은 다르다.



나의 자식이 프라이탁 가방을 멜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조금은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당연히 그에게 가방을 선물할 것이고, 그가 나와 같이 보다 큰 프라이타크 가방을 메게 되었을 때, 꼭 기념찰영을 하고 싶다. 그러한 상상과 그 안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이 가방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로서의 브랜딩, 그리고 인간의 삶 속에서 필요한 썸씽이 작용되게 만드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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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아주 두껍게 이뤄져 있지만 내용이 가벼워 다소 빠른 시간에 완독할 수 있는 반면에, 책 내용 자체가 무거워 얇게 구성되어졌다 할 지라도 도통 진도를 빼기 어려운 책도 있습니다. 허나, 이런 경우 우리는 책에도 경중(輕重)이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내용이 가볍다고 해서 작가가 흐지부지 대충 써내려가거나, 스토리보드 구성을 어설프게 했다면 비록 10페이지로 구성된 책이라 할 지라도 재미를 유발할 수 없으므로 독자들에게 속독과 완독을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1천 페이지에 달한다 할 지라도 퍼즐 맞춤처럼 완벽하게 이어져 있다면.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는 늘 중간을 달립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의 글은 선명한 무채색을 띄고 있습니다. 이번 하루키의 신간 <색채가 없는 다지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색채없는 그가 보여주는 진정한 하루키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읽을 때는 거침없이, 책장을 덮고 나서는 마리아나 해구만큼이나 깊은 고민을 던져주나, 결국 그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연유로 마음 속을 떠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속독과 완독을 이어주는 문장력으로 인하여 쉽게 읽을 순 있으나,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며 책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진도를 빼기 어려운.


"어느 날, 문득 떠올라서 책상 앞에 앉아 이 소설의 맨 처음 몇 행을 쓰고는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인물이 나올지, 어느 정도 길어질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반년 가깝게 이 이야기를 묵묵히 써 왔습니다. 처음에 저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다자키 쓰쿠루라는 한 청년의 눈에 비친 한정된 세계의 모습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매일 조금씩 변모하여 깊이와 넓이를 더해 간다는 것은 제게 굉장히 흥미로웠을 뿐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 작가 인터뷰에서.



작가의 인터뷰를 읽다보니 '과연' 하며 머리를 끄덕거리기도 했습니다. 그 또한 어떤 예상도 하지 못한 채 이 글을 죽 써왔으니, 탈고를 하고 나서도 '이거 독자들이 물어보면 참으로 난감하겠는데. 나 자신도 어떤 결말이 되지 않은 채 이 글을 썼으니' 하고 하루키 본연의 무신경함으로 대처할 것을 상상해보니, 책을 다 읽고 나서 내용의 해석을 위한 사색을 취하는 것 자체가 아주 의미없는 일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이런 연유로 하루키의 글은 무채색, 그야말로 의미를 다는 것 만큼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하루키 글의 무채색은 이번 신작 <다자키 쓰쿠루...(생략)> 에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다자키 쓰쿠루는 어느 날, 친구들에게 절교 선언을 당하고 반년을 죽음 앞에서 오락가락 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추스리고 본인의 삶을 살아가던 중, 왜 그들에게 절교를 당했어야 하는지 의문에 휩쌓이게 되고 마침내 16년이 지난  순례의 해를 맞이해서야 그 네 명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들어보게 될 결심을 하게 됩니다. 

물론 사라의 도움을 받아서이긴 하나 그의 진심이 움직인 것이죠. 본인의 삶에 색채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광명의 빛을 받기 위한 발걸음. 그러나 그 발걸음의 끝에서 그는 자신의 무책색을 되려 그 절교를 선언했던 친구들은 무척이나 동경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자신이 절교를 선언당할 수 밖에 없었던 '성폭행범'으로서의 본인에 대해선 어떤 분노감이나 좌절감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정작 다자키 쓰쿠루가 만들어낸 환상, 순례의 해를 이어가는 그가 여전히 그 환상 속에서 깨지 않을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듯해 보였습니다.

하루키 자신은 아는 것이지요. 진심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동경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안도감 같은 것이란 걸.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그렇게 해석을 하다가도 이내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열린 결말로 매듭을 풀고 있는 것이 글의 해석까지 열린 자세를 견지하게끔 합니다. 몇 시간만에 아주 가볍게 읽었지만, 글에 대한 해석은 불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색채가 없는 글이니 색채를 부여하는 것이 무의미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이쯤되면 상실의 시대를 언급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상실의 시대를 읽은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1년에 한 두번은 계속 읽은 것 같은데요, 젊은 시절, 상실의 시대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쿨하고 멋져 보였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찌질한 궁상의 모습을 갖추더니, 가장 최근에 읽었던 몇 달전에는 이 모든 것들이 와타나베가 만들어낸 환상,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면서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물음을 받으면서 대학 강의실에서 깨어날 와타나베가 아니었을까,

나가사와 선배가 사실은 와타나베 본인 아니었을까 하는 여러가지 의문점에 휩쌓이면서 '하루키가 의도한 것은 진짜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이 유발되는 것을 보면 아마 이번 소설 또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었을 때 또다른 결말을 유추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래서인지 몰라도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때는 아주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죠. 


아무래도 이거, 제가 <색채가 없는 하루키 소설과 내가 순례를 떠난 해> 라고 해서 하루키 글의 종적을 쫒아 움직일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듭니다. 이것봐요. 결국 책의 서평을 쓰고자 했는데 지그재그로 이상한 궁상만 떨고 떠나는 것 같군요.



에필로그) 그나저나 책 서평을 참으로 오랜만에 쓴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여러권을 책을 읽었습니다만 여러 연유에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중에 강상중 교수님의 도쿄 산책자, 고민하는 힘, 살아야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 3권을 특별히 언급한 이유는 올해 들어 읽은 책 중 가장 감명깊게 읽어서이겠죠.

여름이라 피서(避暑)로 피서(避書) 해야 하는데, 이런 책을 읽을때일수록 교토의 이노다 커피가 생각납니다. 책 몇 권 들고 이노다커피에서 하루종일 읽고 싶은 책만 읽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물론 함께 따라는 그 이는 '이봐 큄. 여행을 왔으면 여행을 하자고. 발걸음도 가벼웁게 움직여야 하지 않나'고 핀잔을 주겠지만 어쩌겠어요. 발걸음보다 더욱 가벼운 것은 책읽기인데. 게다가 이노다커피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당신과의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는 수피즘 철학의 원리를 쫒을 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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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회사의 간부회의시간에 모 점장님께서 사장님께 '우수 고객을 위한 적극적인 행사 유치'를 간곡히 청하시면서 실질적으로 고객관련 각종 행사를 주관하는 제게 그 내용에 대한 부연을 강요하는 눈치를 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사장님께서 제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퉁명스럽게 내뱉으셨습니다.


그 동안의 진행사항을 간략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2년전을 끝으로 우수 고객을 위한 행사는 모두 종료되었고, 현재 시점에서 그들을 위한 행사는 없다. 모 점장의 이야기는 일리가 있다, 당사의 지점 특성상 

포켓 상권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을 도모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나서 곱씹어 되돌아보니 우수 고객이 아닌 일반 고객에게도 관대한 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지점의 상황을 생각하니 뭔가 아이러니하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고객센터에서 접수되는 고객의 불만사항은 모두 저에게 들어오는지라 실제로 고객의 불만사항을 다수 접할 수 있는데 그런 고객들중 대다수를 만나보면 왜 이 고객이 현재 화를 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들 대다수가 불만사항을 걸어올때는 거의 다 직원의 불친절과 응대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선 최초의 자신의 주요 목적(제품 교환이나 환불등)은 잊어버리고 '안면의 쪽팔림'으로 이어지는 체면치례때문에 고객의 화는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죠. 바로 직원이 고객의 안면을 몰수하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맞장구를 쳐가며 고객의 편을, 허나 고객이 정말 억지를 부려 상황을 주관적으로 유리한 상황으로 끌어가게 된다면 회사의 편에서 맺고 끊음을 하면서 고객 달래기에 나섭니다. 다행히 10명 중 5할 이상은 제 기술이 통하는지라 웃으며 돌려보내지만, 처음부터 어긋난 사이는 제 힘으론 절대로 역부족입니다. 그런 고객을 놓쳤다고해서 직원을 질타하게 된다면 또한 그 직원의 사기문제와 오해의 불씨를 만든 여지때문에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결국 일반 고객에게도 관대한 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지점의 상황은 저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요. 어떻게 하면 고객과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고, 우수 고객을 위한 행사만이 아닌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였단걸 알면서도 이를 공식석상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저의 착오때문이니 말이죠.


그럴때일수록 톰 피터스의 말이 생각납니다.


친절 = 재거래 = 이윤 (Kindness = Repeat Business = Profit)

나는 최근 저서의 에프그래프로 미국 정치가  헨리 클레이의 명언을 썼다. "작고 하찮은 사람이 보여준 예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장 깊이 울린다." 당신은 비즈니스에서 가장 못난 골칫덩이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점잖고 친절하고 사려깊게 행동하라. 친절은 공짜다. 자상함은 공짜다. 그리고 사람들은 30년 후에도 그 친절을 기억할 것이다.


-엔드 오브 말라리아, 탁월함을 추구하라 中-



어쨌든 회의는 무사히 마쳤고, 다음날이 휴무인지라 서울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구상하고 있던 사업을 위해 필요한 시장 조사를 하였습니다. 좋은 제품을 많이 유치하여 판매하고, 색다른 컨셉트로 매장을 구성하여 고객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여러 샵들을 돌아다니면서 '과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제품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측정하여 판매하는 행태가 아닌 공간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매장을 찾는 고객들이 그 가치에 대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곳"


그토록 제가 원하던 가치의 제안, 즉 Value Proposition 이 실현되기 위해선 다섯 가지의 스탠다드를 구현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1. 생활을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아 ▶ 고객이 행동으로 옮기게 하고,

2. 엉뚱하고 생뚱맞은 것은 구상한다 하더라도  ▶ 고객의 인식을 재조정 할 수 있어야 하고,

3. 재미있는 것을 찾아  ▶ 입소문이 돌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하며,

4.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찾아  ▶ 실제로 기업의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5. 표준제시가 가능한 것을 만들어  ▶ 이것이야말로 가치를 마케팅할 수 있는 것으로 불려야 한다.


이 다섯 가지가 잘 흘러갈 수 있어야 비로소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고, 그 관계가 형성되어야지 비로소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사업이 실현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이것은 제 사업의 성공 키워드가 아니라, 우리 회사의 성공 방정식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의 방정식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정식을 잘 풀어서 정답을 얻기 위해선 '고객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 관계를 잘 맺고나면 이후의 모든 일들은 순조롭게 풀릴 것입니다.

즉 관계를 맺기 위해선 우수고객이든, 일반고객이든 고객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이벤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를 맺고자 함이 진짜인지, 마음가짐은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경쟁은 과소평가되고 기회는 과대평가 됩니다.

적어도 저는 꼭 한 번 더 그 진정성에 대하여 고민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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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백화점에 들어갈 때는 꼭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온갖 진귀한 제품들이 손을 댈 수도 없을만큼 우아하게 자리잡고는 '살 수 있으면 사봐'라는 식으로

저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 그런 제품을 내가 소유할 수 있다는 상상과 실제로 어머니의 지갑에서 나오는 카드를 볼 때, 비로소 꿈이 현실이 되는 희열. 마침내 내 보물을 찾은 것 마냥 하루종일 행복한 미소를 띄는 그런 순간이 예전 백화점에 있었고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하였습니다.


허나, 요즘 백화점은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있지만 아무 것도 없다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백화점이라는 말 그대로 아주 많은 것이 있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는 빠져 있는 모습이 먼저 드는 이유는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저는 '브랜드'가 주가 되고 '백화점의 가치'는 그 다음이 되는 장소로 몰락하는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됩니다. 마치 브랜드를 억지로 입혀놓고서는 '아주 고급스럽습니다'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커뮤니케이션은 욕망의 에듀케이션으로 우리를 설득시키지 못한 채, 혼자서 허우적되고 있는 모습에서 예전의 그 느낌은 사라지고 오늘날 시대의 무분별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백화점 동선 주요 곳곳에는 아울렛이나 시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값싼 제품들이 매대 위에 덩그러이 놓여진 채, 손님을 유혹하고 있으며 그 비싸다는 명품 또한 가격을 내린 채 손님 맞이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에서 개인의 욕망은 가격에 맞춰지고, 가격에 맞춰진 욕망은 그 어떤 상상의 희열없이 자연스런 일상으로 전락해버리니, 백화점이 가지는 가치는 상실해버리는 것이지요. 

보물찾기의 여정이 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격에 의해서 '득템'의 기능적 스킬(Skill)만 발현되기에 이러한 양상이 개인의 자아실현의 단계에 이끌어가지 못함으로써 흥미를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시대적인 현상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장기적인 침체기를 맞이하고 있는 경기의 흐름은 소비자의 지갑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버리고, 니즈에 의한 소비만을 이끌어가다 보니, 욕망에 의한 소비가 강한 백화점에서의 소비를 꺼려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백화점 입장에선 당연히 매출이 토막날 수도 있는 노릇일테지요. 가뜩이나 동종업계의 경쟁자들이 가득한데 말이죠. 그리하여 백화점에선 자구책으로 '매출호조'를 위한 '판매'에 집중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가치를 스스로 변화시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판매된 값싼 제품은 똑같이 백화점

쇼핑백에 담겨 있기에 '감촉'은 여전히 살아있는 무언가가 되어버립니다.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소비자는 쇼핑백 안의 제품이 싸든, 적든 백화점에서 구매했다는 우월적 지위를 사회에서 남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백화점이라고 한다면 '가격'에 구애받지 말고 '제품 본연의 가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으로서의 자부심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가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격 이면에 내세우고 있는 가치관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일상생활 속에서 백화점이 전파해야하는 욕망의 디자인이 되는 것입니다.


"감각이 뛰떨어진 나라에서 정밀한 마케팅을 한다면 감각적으로 뒤떨어진 상품이 만들어지지만 그 나라에서는 잘 팔린다. 감각이 좋은 나라에서 정밀한 마케팅을 하면 감각적으로 뛰어난 상품이 만들어지고 그 나라에서도 잘 팔린다. 상품의 유통이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지 않는 한 이것은 이것대로 별문제가 없겠지만 감각이 뒤떨어진 나라에 감각적으로 앞선 나라의 상품이 들어오면 그 나라 사람들은 들어온 상품에 자극받아 눈이 트여 타지에서 온 상품에 욕망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반대의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감각이 좋은'상품이 그렇지 못한 상품과 비교되는 경우 뒤처진 상품의 계발을 촉진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밀어내버리는 힘도 갖고 있다." - 하라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中-


아무리 맛난 스시라도 일본에서 직접 먹는 것과는 차이가 큽니다. 아무리 맛있는 중화요리 전문점이라 하더라도 중국 본토에서 먹는다면 그 맛은 진짜 맛있는 중화요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 백화점은 백화점 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값비싼 제품만을 판매하는 백화점이 아니라 그 자체가 트렌드가 되는 곳.

개인의 욕망이 꿈틀거리고 그것이 실현되는 곳. 그리고 반드시 보물찾기가 가능한 곳.

백화점에선 스타일이 좋은 제품만을 고르는 곳이 아니라, 스타일이 있는 제품을 고르는 곳입니다.

스타일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 스타일이 있느냐 없느냐가 먼저 떠오르는 곳.


그리될 때, 백화점은 비로소 백화점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브랜드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 질문에서 물론 제외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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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난생 처음으로 해외땅을 밟기 위해 준비했던 순간. 

서울에 올라가 비자를 위한 신체 검사를 하고,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뭘 준비할까 생각하다 구입한 것이 카메라와 선글라스. 원래 한 번 산 물건은 싫증을 느끼지 않고 잘 사용하기 때문에 제품 수명은 꽤 오래가긴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심해지는 건망증으로 인하여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터라 심적으로 잃어버린 제품들이 몇 가지 존재하긴 하지만 선글라스의 경우에는 여전히 제 차 콘솔 박스안에서 명(命)을 유지하고 있긴 합니다.

처음으로 샀던 카메라의 경우(소니 DSC 시리즈인데 모델명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베트남 나짱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떨어뜨렸는데요, 게스트 하우스에 당도했을때 비로소 잃어버린것을 직감하곤 이윽고 움직였던 동선대로 다시금 가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사진을 찍는 즐거움보다는 단순히 여행을 기록한다던지, 업무용으로 쓰임이 더욱 잦은터라,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난 뒤 한동안 카메라를 구입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1회 대구 사진 비엔날레 초대 위원장님이신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님의 사진과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서는 사진을 기록한다는 의미보다 일상을 즐긴다는 의미로서 받아들이고 약 4년전에 캐논 EOS 500D를 사게 되었습니다. 허나, 초심은 다른 곳에서 흔들리더군요. 제게 있어 DSLR(아무리 입문자용 카메라였다하더라도)은 너무 무겁고 거추장 스러웠습니다. 사진을 찍는것이 아니라, 사진기를 패션 아이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당시의 습성에서 저 또한 빠져나가지 못한게 아닐까하는 죄책감마저 들 정도로 저와 맞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단히 감성적이고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인간인지라, 기계의 편의성에 사진 특수를 기대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거니와, 뭔가 기술적인 냄새가 나는 것은 저와 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다시 몇 개월만에 카메라를 처분하고 이번엔 삼성 VLUU ST 50 으로 갈아타게 됩니다.


이 친구는 저와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교토에서도, 오사카에서도, 유후인에서도 , 후쿠오카에서도 저와 함께 유익한 시간을 보냈었지요. 부모님께서 유럽 여행과 미국, 캐나다 여행을 가실때도 이 친구가 한 몫 했습니다. 사실 이 친구를 좀 더 사용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사진 또한 꽤 잘 찍혀져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나온다는 뜻은 아니고 제가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곧잘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굳이 다른 카메라가 필요하다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사람 마음이란게 참으로 간사하더군요. 약 4년 정도 함께 했으니 충분히 장수를 누렸다는 생각이 앞서나가면서 똑딱이면서 이 녀석 보다 좀 더 나은 친구가 하나 있으면 어떨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약간의 비용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하이엔드급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일반 보급형 똑딱이로 갈아타느냐 하는 길목에서 나의 네 번째 카메라인 RICOH CX5 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리코 카메라는 이름만 들어봤을 뿐, 그 어떤 정보도 없었습니다. 다만 카메라가 고가에 구성되어있다는 것, 매니아층에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는 정보만 알고 있었지, 이 카메라의 성능이라든지 다양한

정보에 대해선 무지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SAS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그리

느끼고 있었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 블로그 댓글 캡쳐 예시)





그리고 편의성을 중시한 입문자 모델이라 마음 가는대로 만져도 크게 문제는 없을거라는 말씀에 이 친구를 입양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전 친구였던 VLUU ST50보다 훨씬 고퀄리티를 자랑한다는 점, 심지어는 가격까지 더 싸다는 점이 이 녀석의 입양을 후회하지 않게끔 만들었습니다.











네 번째 카메라의 기능 중 한가지는 크리에이티브 모드라고 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제가 여기에 올린 사진은 맨 처음 하나만 빼고 모두 콘트라스트로 찍은 사진입니다.

원래 절제와 여백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 흑백사진이 저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진을 담을때 생각하던 그 여백과 사람들의 숨소리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습니다.그리고 분명한 것은 카메라를 가져다대고 기다렸다 순간의 찰나가 올때 셔터에 손을 가져다되면 이윽고 약간의 노이즈를 발생시킨 뒤,

철컥하면 아주 흡족할만한 사진을 간추려 내니, 이만한 친구가 없을 것 같아 한편으론 기분이 좋은반면

이 멋진 친구가 한계치에 다다랐을때 추악한 모습을 자아내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공존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전혀 개의치않아도 될 것 같네요.

어딜 여행 간다하더라도 제 생각과 일치된 사진은 이 친구가 모두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메라 탓하지 말고 제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시각을 어떻게 표현해낼지를 먼저 간수해야겠지요.

아! 리코의 CX 5 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친구인 것 같습니다.


자아. 이제 이 녀석과 함께 비행기 탈 날만 남았네요.

어디든지 떠나야죠. 마음이 떠나라고 시킬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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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느 지역 작은 가게에서 '이 손으로 직접 담근거야'하며 할머니가 주름 가득한 손으로 맛깔스러운 채소 겉절이를 내주는 서비스는 대형 체인점에선 절대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큰 사게들과는 

다른 스타일로 가게를 운영한다면 손님이 오지 않을 일은 없다"


일본 이자카야 업계의 전설이라고 불리우는 우도 다카시의 책 <장사의 신(神)> 을 읽은 기억을 새삼스레

떠올린 것은 어제 백화점을 기웃거리다 한 브랜드에서 판매되고 있는 옷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이 브랜드에선 'Re code' 라는 서브 브랜드(Sub Brand)를 통해 자사의 이월재고품을 재가공하여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패션유통업계에선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으로 대변되는 SPA (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가 강세를 띄고 있습니다. 허나, 이 패스트 패션이란게 1~2주일 주기로 새로운 디자인 제품이 입고, 판매되다 보니 환경오염이다 뭐다하는 사회문제로 

야기됨에 따라 반대개념인 슬로우 패션(Slow Fashion)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이는 빠른 주기로 제품을

공급하는 특징을 가진 SPA 등과는 달리 고급 원단을 이용하여 오래 입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어제 본 것처럼 자사의 이월재고품등을 재가공하는 형태로 판매되는 제품도 슬로우 패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슬로우 패션이라는 것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적인 부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최근들어 최고의 수식어라고 일컫어지는 '착한' 제품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허나, '착한 제품'이라고 해도 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비단 '높은 가격'때문만은 아닙니다. 제품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아니었죠. 오히려 거부감 비슷한 것이 제 속에 꿈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그것은 바로 슬로우 패션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슬로우 패션이 지니고 있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인 '진정성'이 결여된 채, 매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오히려 '안티 소비'를 생성해내게끔 할만큼 부자연스러웠습니다. 매장 점원 또한 제품의 가치엔 전혀 관심없다는 투로

'그거 레코드라고 이월제품 모아다가 새롭게 만들어서 판매하는 제품이에요. 원단도 좋고, 디자인도 이쁘죠? 어디 가서 이런 디자인 제품 없으니깐 하나 장만해두시면 좋은 아이템으로 쓰일 거에요.' 라며 판매에 지나친 비중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시도가 제대로 먹힐 수 있을까하는 의문감만 들었습니다. 비즈니스란게 고객이 사주어야 이뤄지는 것인데 온통 판매에만 치우쳐져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매장 직원이 최근 마케팅 3.0 의 열풍을 이야기 한다던지, 문영미 교수의 디퍼런트에서 언급되는 사례를 나열한다던지하는 사회 전반적인 시장 문화를 설명하면서 고객에게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알릴 수 있는 PR 을 했다면 '착한 제품'이니 '착한 행동' 을 한 번 해보자는 식의 소비 유도를 이끌게도 할 터인데 PR 을 광고로, 판매 목적으로만 사용하다 보니 결국 제품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가치 또한 떨어뜨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결국 PR 은 PRoposition, 즉 제안을 통한 소비자의 참여를 유도케 해야지, 소비자의 구매를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은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검정색 자동차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포드의 T모델을 살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소비자 습성은 세분화되어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소비자 스스로 생각하고 소비자 스스로 진화하는 시대에서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은 바로 '가치를 부여'하여 소비자의 주관하에 판단하여 구매를 하게끔 하는 것. 이를 위해선 단순히 제품을 제조, 판매하는데에만 그치지 말고 소비자와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그 이면에 지니고 있는 '진정성'이라는 가치를 선택하게끔 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판매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판매방법은 당분간 대기업에선 꿈도 못 꿀 일인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 장사를 하건, 그렇지 않건간에 대기업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대기업을 운영한 경영자의 마음으로 이끌어보고 싶습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어떤 것(something),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이미 실행에 옮겨나가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은 어떤 것(something) , 그리고 판매를 할 수 있는 뭐든 것(anything)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의식을 담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다시 우도 다카시의 말이 생각납니다. 


"요식업은 100엔짜리 토마토를 수퍼마켓에서 산 뒤 50m 떨어진 이자카야에서 냉장고에 시원하게 뒀다가 썰기만 해도 300엔이 될 수 있는 엄청난 장사"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200엔의 차액은 음식에 대한 주인과 종업원들의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5천원짜리 제품을 팔게 된다면 거기에  제 마음과 직원의 마음을 담아 판매하고 싶습니다. 고객이 스스로 사주었을 때 일어나는 짜릿한 추억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일. 그래서 저는 늘 앞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인줄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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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제가 업무 때문에 늦게 보내드려서 총 60분 이상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방금 확인하고 선착순으로 13분께 초대장을 보내드렸습니다. 정중하게 사과 드리구요, 받으신 분들은 좋은 블로그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요즘 바빠진 업무때문에 블로그 관리가 너무 소홀해진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SNS 가 대세라고 해도 저와 6년을 함께해온 티스토리 블로그는 여러모로 마음의 안식처인데 말이죠.


초대장도 매 달 꾸준히 지급하려고 하지만, 최근들어선 근 몇 달간, 초대를 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총 16장의 초대장이 있네요. 지인들께 줄 수량 3개 정도를 제외하곤 총 13분께 블로그를 운영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면 초대장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맛 점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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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이 글귀에 주목을 하면서 저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치관은 다양해지고 자유로워졌습니다만, 자유가 확대될수록 불확실성은 커지기 때문에 불안도 커집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신경쇠약은 20세기가 공유하는 병이다"라고 썼습니다만, 21세기는 '우울증의 시대'라고 해도 좋겠지요. 우리는 '고민'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사적이고 개별적인 것이며 그 사람의 내면적 문제이므로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알려지게 됩니다. 자살이나 우울증의 원인도 개인의 문제로 봉인되고, 그것에 부스럼 딱지를 만들듯이 '자기책임'이라고 말해졌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은 사실 어떤 공통된 원인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사는 한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저는 좀 더 고민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철저하게 고민하고 다시 한 번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살아가는 힘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 도쿄 산책자, 강상중


저는 딱히 계획적인 사람은 아닙니다만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던지고 물어보는 편입니다. 가령, 여행을 하겠다하면 날짜만 맞춰서 아무런 준비없이 다녀오곤 하지만 회사에서 중책을 맡았다고 하면 그것의 사업적인 타당성과 함께 어떻게 움직여야 효율적으로 일이 진행되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많이 확보할려고 애쓰곤 합니다. 이처럼 논리적 근거를 확보한 뒤에는 자료를 만들게 되는데 작성된 자료는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제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만 비로서 상부에 보고를 올리곤 합니다.

논리적 근거 확충 - 제작 - 사후 피드백 - 완성이라는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나의 일이 완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는 저를 보고 있노라면, 주변의 지인들은 쓸데없이 고민한다고 일침을 놓으며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저 또한 이런 스타일이 꽤나 지루하고 폼(?)이 나지 않아 스타일 변경에 상당히 고심을 하긴 하지만, 

이 '불변의 진리'를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은 부하직원이 정말 고민한 흔적이 전혀없는 자료를 만들어 눈에 들이된다거나, 주어진 업무를 시간 내 처리하지 않고 변명부터 늘여놓는 모습들을 보게 되면 답답한 마음부터 들고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며 틀린 부분들을 하나씩 고쳐 나가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가공하지 않으면 결코 실행으로 옮길 수 없으며 시행착오를 겪기 전에 최소한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고민이 가지는 장점을 믿고 따르기에 이러한 스타일을 바꿀 수 없는 것이겠죠.


허나, 이처럼 고민만 거듭하다보면 과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의문에 휩쌓이곤 합니다. 고민이 지속되는만큼 현실적인 감각은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체내로 깊숙히 주입되어 고민의 정점에 서있는 도마뱀뇌를 자극하게 되는 것이죠. 꼬리를 잘라내는 일은 일단 저지르고 보자식의 막무가내인데, 고민없이 움직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저로서는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매번 그런 상황에서 쳇바퀴처럼 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그리하여 저는 다시금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로또 당첨이나 막연히 꿈꾸는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로

재탄생되어지는 것이죠. 



저는 평생 일을 하고 싶습니다. 나이를 먹고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나가야하는, 여전히 일을 하고자하는 의욕과 능력이 수반되어 있지만 세월의 막연함을 계기로 내려놓아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아이들에게 나의 일을 가르치고 또한 家業을 일생의 課業으로 물려주고 싶습니다. 제 녀석이 싫다하면 그만이지만, 그렇다면 죽을때까지 제 손으로 일을 거두고 싶습니다. '왜'일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명확하게 그려지고 있는 가운데, 이제 남은 것은 고민을 하지 않고 시작을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강상중 교수님께선 좀 더 고민해도 좋다고 말씀하셨지만 고민은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것은 도마뱀뇌의 꼬리를 자르는 것이겠지요.

어떻게 자를까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자르는 것만 남은겁니다.

도마뱀의 꼬리는 재생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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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노다커피 산본점에서 무라카미氏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른 아침 전화가 와서 느닷없이


 " 아! 큄상 저 오늘 하네다에서 오사카로 들어갈겁니다. 내려서 JR로 교토로 들어갈거에요. 6시쯤 도착할 예정이에요. 하나마치에서 오늘 아주 진귀한 쇼가 있다는군요. 큄상도 같이 가면 좋겠지만 오늘은 게이꼬랑 단 둘만 보기로 했어요. 게이꼬가 자신이 '하루키스트'라면서 이번 신작 출판 기념회를 열어준다고 해서요. 그 왜 며칠 전에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가 서적에 전시되기 시작했거든요. 약속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들어갈테니 산본점 이노다커피에서 잠깐 만나요. 혹시 제가 정시보다 늦어지면 카페오레를 미리 시켜주세요. 이노다의 카페오레는 식어도 맛있으니까요."


역시 무라키미氏 답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니시키 마켓에서 아침 겸 점심이나 해결할까 싶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을 나왔습니다. 이른 아침의 시장 풍경은 늘 포근함을 줍니다. 특히 요즘같이 아침 저녁으로 쌀쌀함을 맞이할때는 더욱 더 그렇죠.

무라카미씨는 1Q84년에 동경 자동차 전용고속도로에서 저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신포니에타, 야나체크의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이 노래, 택시에서 듣다니 오늘 아주 운이 좋네요.'라는 말을 건네오면서부터 신주쿠까지 줄곧 이야기를 이어가다 이렇게 지금까지 만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소설가라는 사실은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알게 되었는데, 어느날 요미우리 신문에서  '처음 소설을 쓴 것은 29살때의 일이고, 야쿠르트 스왈로우즈와 히로시마 카프의 경기를 진구구장에서 보던 중, 데이브 힐튼이 2루타를 치는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글과 함께 무라카미씨의 작품세계에 관한 짤막한 칼럼을 게재한 것을 보고 나서 '역시 무라카미씨는 태생적으로 소설가야'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쨌든 <교토야채 상가>에 들려 싱싱한 채소를 몇 개 고릅니다. 오늘 아침은 사라다로 해야지 마음먹고는 양상치와 케일, 파프리카 그리고 브로콜리(늘 생각하는 것입니다만, 뇌종양이 걸려 뇌가 활동을 정지하면 뇌를 끄집어내어 브로콜리로 대체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미래가 오지 않을까 하네요.)를 사고, 

가네다상이 직접 만든 사우전드 교토스타일 드레싱을 500ml 정도 주문을 합니다. 자신이 직접 개발한 소스를 늘 구입해주어서 고맙다는 가네다상의 75도식 인사법은 언제나 보는이로 하여금 기분 좋은 미소를 만들어줍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가네다상의 드레싱이 가져다주는 아침 위안은 온 세상의 보물과도 견줄 수 없다"면서 75도식 인사법에 대처하곤 하지요. 계산을 다하고 나서는 <KYOTOFU>에 가서 두부 1모를 삽니다. 어제 NHK에서 두부요리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을 본 터라, 매번 먹던 연두부 대신 부침용 두부로 주문하였습니다. 사라다와 두부의 궁합은 이른 아침 식욕을 더욱 이끌어주는 것 같습니다.


대충 다 샀겠다싶어 서둘러 니시키 마켓을 빠져나와 아침 햇살 속에 발걸음을 녹이며 이노다커피로 향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이노다커피 본점과 산본점이 있는데, 가까운 거리로 말할 것 같으면 본점쪽이 더 가깝겠습니다만, 본점에는 도쿄나 오사카, 고베등지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자리를 잡는 편이라,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조용한 산본점을 찾게 됩니다. 무엇보다 산본점에는 유리짱이 있기 때문이지요. 유리짱이 내려주는 아라비안의 펄은 저를 잭 스패로우로 만들어주는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유리짱은? 엘리자베스는 아닐테지요.

이노다커피 산본점도 막 문을 열었는지 가게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라운드 테이블로 자리를 잡고 장바구니를 바닥 아래로 내려놓은 뒤 가볍게 눈이 마주친 유리짱에게 아라비안의 펄 한 잔을 부탁하였습니다. 이노다커피를 맡고 있는 덴고氏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무라카미씨의 방문을 일러두었습니다.


"오늘 6시 30분쯤에 무라카미씨와 함께 다시 들릴 예정입니다. 주문이야 그때가서 해도 되지만, 저는 늘 마시던 걸로 주시면 되고, 무라카미씬 카페오레로 미리 주문해주세요."


무라카미씨가 카페오레로 주문해달라고 부탁했냐는 덴고씨. 그러고보니 덴고씨도 하루키스트.


"무라카미씨는 조금 늦을테고, 그는 원래 식은 카페오레를 좋아해요."


덴고씨와 저는 함께 웃었습니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씨와 함께하는 토요일.


-이노다커피에서 글을 쓴다는 것-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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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전에 내 앞에 놓인 하얀색 종이를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아픈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여백(餘白)의 아름다움에 해코지를 한다는 마음에 동심의 장난기가 더해져 쓰지 말았어야 할 글을

쓴다고 가정해보면, 그 글은 의미를 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글쓴이의 편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어느 한 날, 꿈에서 셰익스피어가 나타나 내게

'글을 하루라도 쓰지 않는다면 다음 날 당신은 길거리에서 차에 치여 죽을 것이다'라고 경고를 한 뒤로부터 나는 파라노이아적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늘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니면서 글을 썼고, 그리하여 어제, 그리고 어제, 그 어제의 어제에도 차사고를 당하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두려웠던 것이다. 태어남으로써 의무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할 그 익숙한 죽음이 두려워서

나는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웠고, 자아는 마치 혼돈의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는것만큼 충격적으로 일그러졌으며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면 마치 내가 죽는것만큼

혼절하였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때문에 나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내가 글을 쓰면 나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


허나, 그런 삶을 계속 살아간다는 것 자체도 무의미한게 분명하였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불순한 동기가 내게 있어선 치욕적인 것이었고, 결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테라스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지나가는 사람들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들, 버스들, 자전거들도 바라본다. 나는 이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이 글을 끝으로 나는 몽블랑 마이스터쿽 볼펜의 뚜껑을 닫고 애지중지하던 이 볼펜을 오랫동안 사모했던 스타벅스 파트너 '애플'에게 줄 예정이다. 그녀가 받아줄 지 안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게 존재한다면 결코 그것을 버리진 못할 것이다라고 다짐하였다.


나는 이 글을 쓰고 나서 자동차로 뛰어들 생각이다.

글을 쓰면 죽지 않겠지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이 글은 나의 유서가 될 것이다.


이 글이 내 생에 있어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나는 글을 쓰고도 죽을 수 있는 첫 번째 인간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이 파라노이아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스페셜 원이 분명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라도 일을 해야지 죽지 않는 사람들'

'하루라도 책을 읽어야지 죽지 않는 사람들'

'하루라도 섹스를 해야지 죽지 않는 사람들'...


개별적인 망상속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마지막 글을 썼다.


- 소설, 하루키의 죽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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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스님다람쥐께선 수십 억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별에서 한 다람쥐를 만나는 것이야 말로 우리 다람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자 행복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만남을 '운명'과 '인연'이라는 보다 함축적인 단어로 표현하면서 필시 만날 인연이었기에 운명으로 자리매김하여 서로의 곁에 둘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힘은 실로 위대한 것으로써 서로가 모르고 살았던 수십 년의 과거들은 한낱 먼지처럼 허공을 가르고 함께하는 오늘은 보다 밝은 내일의 희망을 위한 전주곡이 되어 시간 속에 아름답게 수놓게 됩니다. 허나, 그런 믿음도 약간의 틈을 보이게 될때즈음 변질되어 버립니다. 그 틈 속에서 자라오르는 사소한 오해의 불씨는 마그마의 그것보다 더욱 뜨거운 열기를 내뿜게 되면서 믿음이라고 불리우던 위대함을 한순간에 녹아버리게 합니다. 마치 그것이 처음부터 존재했는지도 의아한 그런 상태로 말이죠.

그런 상태에 접어들때, 서로가 약속했던 장미및 미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가 마음속에 만들어놓은 타임머신을 타고 상대의 과거로 돌아가 불쏘시개를 들춰내 그들 자신이 마그마가 되어 남아있던 믿음까지도 모조리 불살라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다시 우리는 '운명'과 '인연'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낼 또다른 만남을 꿈꾸게 되는 쳇바퀴속에 스스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쳇바퀴속 다람쥐는 결코 그 곳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쳇바퀴 속에서 탈출한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이노다커피에서 커피를 마시는 고상한 다람쥐 한 마리, 그에게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탈출했어?"

그 질문이 익숙한지 다람쥐 한 마리는 이노다커피에서 가장 유명한 아라비안의 펄을 한 모금 마시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습니다.


"간단해요. 운명과 인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되죠."


그리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인간계 철학자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가 한 말을 좋아하는 거죠. 세네카였던가요? 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사랑받기 위해선 먼저 사랑해야한다'고.  그냥 사랑하는 겁니다. 그 사랑이 이어져 믿음이 되고 운명이 되며 인연이 된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사랑하면 되요. 첫 눈에 반했다면 그대로 사랑하면 되요. 이것저것 따지고 물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운명과 인연을 생각하신다고요? 그게 믿음의 발로가 될 수 있다고요?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아요. 생각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그 깊이는 때론 얕고 좁거든요. 행복하다고요?

아름다운 추억으로 시간을 수놓는다고요?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아요. 

행복이 내 안에 있을 뿐이고, 아름다운 추억이 서로 안에 있을 뿐입니다. 그것들은 일시적으로 안에 있을 뿐, 나갈 수도 있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도 다람쥐처럼 아라비안의 펄을 한 잔 시켰습니다.

오다상(氏)이 내어주는 따뜻한 펄 한잔을 기다리면서 마지막으로 궁금한게 생겨 다람쥐에게 물어볼려고 고객를 돌렸습니다. 그 다람쥐는 없고, 나만 남았습니다. 내가 그 다람쥐였을수 있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쳇바퀴에서 나온 선배 다람쥐를 만난 두 번째 다람쥐가 되었습니다.


그 선배 다람쥐 때문에 나도 쳇바퀴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문자를 넣었습니다. 

처음 뵙겠다며, 기회가 될때 보자고 문자를 한 통 넣었습니다.

때마침 이노다커피의 아라비안의 펄이 나왔습니다람쥐.


이노다커피에서 연락을 한다는 것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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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보면 자신만의 여행 습관이란 것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굳이 저한테 필요 없다고 할 지라도 뭔가 좋은 물건이 있으면 일단 구매를 합니다.

하루키씨라면 아마도 이런 경우를 '물건을 사고 나서 그 쓰임을 생각하는 수행'이라고 표현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일단 이쁘거나, 맛나거나, 뭔가 느낌이 와닿으면 구매를 하고 가방에 넣어둡니다. 이 습관은 특히 일본에서 빛을 발하는데요, 워낙에 상품별로 세분화가 잘 되어있는 곳이라 한 눈에

봐도 이쁘다고 여겨질법한 물건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허나, 그렇게 샀던 물건들이 한 번도 선물로 타인에게 전달되어진 경우는 없었습니다. 

술이나 초콜렛과 같은 먹거리용품들은 함께 마시거나, 나눠서 먹기 때문에 굳이 선물이라는 포장을 씌울 수 없을 것 같고, 나머지 것들은 모두 제가 착용하거나 썼기 때문에 쓰임으로서의 소멸이 이뤄졌다는 표현이 어울릴듯 합니다. 


이번 교토여행에서도 물건을 샀습니다. 제가 쓸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였고, 먹을 수도 있었으며 내 것이 아닌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것들을 쓰임으로 삼는 지혜가 부족한 저로서는 그저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며 이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탄생의 순간들을 시나브로 기다릴 수 밖엔 없었습니다. 설령 선물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선행 되어야겠지만, 또한 상대방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비로소. 처음으로.

습관이 빚어놓은 물건들이 마침내 선물로 재탄생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받는 이에겐 미소의 싱그러움을, 주는 이에겐 마음의 포근함을 안겨다주는 순간으로 수놓아졌습니다.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기억할 순 없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는 쥰세이의 말처럼.

아오이를 기다리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샘솟던 그 찰나의 감각들이 물건에 녹아서 받는이와 주는이의

행복으로 빚어지는 그 순간을 습관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역시 이 습관은 제가 가진 것들 중 가장

빛나는 원석이고 삶의 기쁨을 만들어주는 샘물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노다커피에서 떠오른 악상이 오선지에 그려져 화음으로 이어집니다.

현을 조율한 뒤, 더욱 아름다운 음을 연주하기 위한 연주자의 마음이 허공을 가르며 함께 연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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